수학의 확실성 - 모리스 클라인
신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계시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탐구를 해 나가고, 그래서 조만간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여기 이것들이 마치 진리인 듯 생각하자.
그러나 신에 대한 진리와 내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아무도 알지 못하고 또 앞으로도 아는 자가 없으리라.
만일 어떤 자가 스스로 완전한 진리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그 자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며
모든 것에는 겉모습이 덧씌워져 있어 본모습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 크세노파네스
저자
- 모리스 클라인(MORRIS KLINE, 1908∼1992년)
모리스 클라인은 브루클린과 자메이카, 퀸스에서 자랐다. 브루클린의 보이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같은 대학교에서 1930년에 학사 학위를 받았고 석사 학위(1930년), 박사 학위(1936년)를 받았다. 1938년부터 1975년까지 뉴욕 대학교 쿠란트 수리 과학 연구소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은퇴 후에도 쿠란트 수리 과학 연구소의 명예 교수로 일하며 수학과 수학 교육에 관한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순수 수학만이 아니라 응용 수학의 의미와 가치를 대중적으로 인식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저서로는 「수학 입문(Introduction to Mathematics)」(1937년),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Mathematics in Western Culture)」(1953년), 「수학과 물리 세계(Mathematics and the Physical World)」(1959년), 「왜 교수는 못 가르치는가 : 수학과 대학 교육의 딜레마(Why the professor can’t teach: Mathematics and the dilemma of university education)」(1977년), 「비수학자를 위한 수학(Mathematics for the Nonmathematician)」(1985), 「지식의 추구와 수학(Mathematics and the Search for Knowledge)」(1986년)
- 옮긴이 심재관
건국대학교 영문학과와 고려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 주립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경북 대학교 위상 기하 연구소 연구원, 서울 대학교 BK21 연구원으로 있었으며 2006년 현재 고려 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그림 없는 그림책」, 「존재하는 무」, 「케플러의 추측」, 「열정을 기억하라」 등이 있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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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대학교 쿠란트 수리 과학 연구소의 교수로 재직했으며 다양한 수학 대중서로 천문학 분야의 칼 세이건에 맞먹는 명성을 누린 응용 수학자 모리스 클라인의 대표작으로, 피타고라스와 유클리드에서 시작된 서양 수학의 역사를 훑으면서 모든 지식 체계의 전범이자 다른 모든 학문의 확실성을 보장해 주는 학문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수학이 어떻게 자신의 확실성조차 명확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다른 학문과의 연결 고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수학의 흥망성쇠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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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클리드가 『기하학 원론』을 지으면서 가졌던 꿈, 즉 몇 가지 확실한 공리에서 수많은 정리와 수학적 사실을 유도해 낼 수 있는 거대한 연역적 지식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아이디어가 어떤 사회적, 문화적, 지적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그 아이디어가 역사의 발전과 인간 지식 체계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좌절을 맛봤는지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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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진리를 대변하는 그런 학문이 아니다. 완벽하지도 않다. 이를 신성시 하는 것은 잘못된 풍조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버려야할 것도 아니다. 수학은 인간 이성의 최고 산물이며 한계는 있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도구이다. 수학의 한계와 문제점을 파악하고 인간 문화와 함께 현실과 함께 발을 딛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수학을 하는 참된 의미가 아닐까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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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수학 기초론의 발전 과정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적절하게 요약될 수 있을 듯싶다. 라인 강둑에 수백 년 된 아름다운 성이 서 있다. 성 지하에 사는 부지런한 거미들이 거미줄로 거미집을 정교하게 지어 놓았다. 어느 날 세찬 바람이 불어 거미집이 부서졌다. 거미들은 미친 듯이 실을 뽑아 거미집을 고쳤다. 그것은 거미들이 성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지탱해 주는 것은 자기들이 지은 거미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482
1장 수학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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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탐구라는 측면과 관련해 특기할 만한 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에우독소스와 마찬가지로 프톨레마이오스도 그의 이론이 관측내용과 합치되는 편리한 수학적 기술일 뿐, 자연의 실제 모습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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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연역적 방식과 자연법칙을 수학으로 표현하려는 생각이 알렉산드리아 시대를 여전히 지배하기는 했지만 고대 그리스 인들과 달리 알렉산드리아 인들은 실험과 관찰로부터 진리를 발견하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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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연구 성과 및 수많은 과학 탐구 결과와 더불어 그리스인들은 우주가 수학적으로 짜여 있다는 믿을 만한 증거를 남겨 주었다. 수학은 자연 곳곳에 내재되어 있다. 수학은 자연의 구조에 관한 진리이며 플라톤이 생각했듯이 물질 세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실체이다. 우주에는 법칙과 질서가 있으며 수학은 바로 그러한 질서를 밝혀내는 열쇠이다. 더욱이 인간 이성에는 이러한 우주의 계획을 꿰뚫어 그 수학적 구조를 밝혀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자연을 파악하는 데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방식을 채택하자는 생각이 생겨난 것은 주로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에 그 공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 저작으로 인해 수학을 바탕으로 모든 물리적 지식을 논리적으로 조직하려는 생각이 지식계에 생겨났다. 따라서 수학과 자연 탐구 양자를 하나로 묶는 일은 그리스 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자연의 수학적 구조를 밝히는 것이 곧 진리 탐구였다. 수학 법칙이 자연에 관한 진리라는 믿음은 가장 심오하고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을 수학 연구로 이끌었다. p58
2장 수학적 진리의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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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세계를 탐구하는 주된 목적은 하느님이 세워 놓고 수학의 언어로 우리에게 계시한 합리적 질서와 조화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 요하네스 케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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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와 요하네스 케플러는 자연이 수학적으로 짜여 있다는 그리스 사상과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고 설계했다는 카톨릭의 가르침을 아무런 의심 없이 모두 받아들였다.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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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운동의 총합이며 우주는 수학적으로 조화롭게 설계된 위대한 기계이다. 과학뿐만 아니라 질서와 수량을 다루는 모든 학문은 수학에 의지해야 한다. 과학은 질서와 수량을 다루고 있으며, 그에 따라 수학과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수이든 형태이든 또는 항성이든 소리이든 다루는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 대상과는 독립된, 질서와 수량에 대한 일반 과학이 존재해야 한다. 실제로 그러한 일반 과학이 존재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수학이라는 학문이다. 수학은 유용성과 중요성에서 다른 모든 과학을 능가하는데, 수학이 다른 모든 과학에서 다루어지는 대상들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 데카르트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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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는 낙하하는 물체에 가속도가 생기는 원인이 연구의 필수적 부분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단지 운동의 성질만을 기술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과학적 탐구는 궁극적 원인을 찾는 형이상학과 분리되어야 하며, 물리적 원인에 대한 사변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과학자의 임무는 원인을 캐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수량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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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통적 학자들은 이미 상정해 놓은 원리와 세계가 어떤 식으로 합치되는지 살펴보면 된다고 여겼다. 갈릴레오는 물리학에서는 수학과는 달리 경험과 실험에서 제1원리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믿었다. 올바른 기본 원리를 얻는 방법은 마음이 선호하는 바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이야기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이미 상정해 놓은 생각에 합치되는 자연 법칙을 받아들이는 과학자와 철학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자연이 먼저 인간의 두뇌를 만들고 그 다음으로 인간의 지능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게끔 자연 스스로는 구성해 내지는 않았다고 갈릴레오는 말했다.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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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물리적 원리는 경험과 관찰에서 얻어 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혁명적이었으며 또 동시에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갈릴레오 자신은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할 때 사용한 여러 원리 가운데 일부는 정신을 통해 파악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험의 역할을 인정하자 회의가 스며들 여지가 생기게 되었다. 만일 과학의 기본 원리가 실험에서만 나와야 한다면, 왜 수학의 공리는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은 1800년까지는 이 질문에 구해을 받지 않았다. 수학은 여전히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p91
3장 자연은 수학으로 씌어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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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론이든 간에 그 이론이 얼마나 엄밀한 과학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안에 담긴 수학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 이마누엘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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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 운동에서 뉴턴이 이룬 최대의 업적은 케플러가 오랜 기간 관측과 시행착오를 거쳐 얻어 낸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이 중력 법칙과 세 가지 운동 법칙에서 수학적으로 연역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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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철학의 수학적원리] 서문 중에서 - 뉴턴 p101
고대인들이 자연 현상의 탐구에서 역학이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했고 또 현대인들이 본질적 형상과 신비주의적 속성을 거부하고 그 대신에 자연현상을 수학적 법칙에 종속시키려 노력해 왔던 바, 본 저자는 이 책에서 자연철학과 관계를 맺고 있는 범위 내에서 수학을 가능한 범위까지 연구하고 발전시켰다. … 따라서 저자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이 책을 내놓았다. 운동 현상에서 자연의 힘을 연구하고 다시 이 힘들로부터 다른 현상을 설명해 내는 것이 바로 자연철학의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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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뉴턴의 놀랄만한 업적이 가능했던 것은 물리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경우라도 수학적 기술을 채택했기 때문이었다. 물리학적 설명 대신에 뉴턴은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수량적으로 기술했고, 이는 매우 중요하면서 또 유용한 업적이었다. 그래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서두에 “이러한 힘들의 수학적 개념만을 다룰 뿐 그 물리학적 원인과 의의는 다루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힘의 본직이나 속성을 어떤 가설로도 이해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온전히 수학적 방식(뉴턴의 원전에 이탤릭체로 강조되어 있다.)으로 이 책을 전개할 따름이다. p103 - 리처드 벤틀리에게 보낸 편지 - 뉴턴 p103
중력은 물체에 내재적이고 본래적이며 또 본질적인 것이라서, 한 물체가 아무런 매채체 없이 진공을 뚫고 다른 물체에 작용한다는 생각은 너무도 어불성설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철학적 사고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인력은 어떤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작용하는 매개자로 인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매개자가 물질인지 아니면 비물질인지는 독자가 생각해야 할 몫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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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성공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적 설명이 없다는 점 때문에 과학자들은 불만을 느꼈다. 하지만 물리학적 설명을 더하려는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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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 역학과 그 이전 역학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수학을 도입했다는 점이 아니다. 수학은 편리하고 간결하고 더욱 분명하며 더욱 포괄적인 언어로서의 장점을 가지고 물리학에 도우미 역할을 했지만 단순히 그것으로 그치지는 않았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수학이 근본적인 개념을 제공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인력이란 이름은 단지 수학적 기호를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뉴턴의 운동 제2법칙( $F = ma$ 즉 함은 질량에 가속도를 곱한 것과 같다.)에서 볼 수 있듯이 힘은 질량에 가속도를 일으키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힘의 본질 자체는 물리적으로 이해하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뉴턴은 구심력이나 원심력의 원리를 몰랐으면서도 그 개념을 사용했던 것이다.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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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이론은 자연이 수학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자연의 참된 법칙은 수학적이라는 신념을 심어 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제임스 진스가
신비한 우주(1930)
에서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는 순수 수학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라고 말했을 때 이미 그는 최소한 20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진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p107 -
뉴턴의 종교적 관심이 그의 수학 연구와 과학 연구를 이끌어 낸 진정한 힘이었다. 하느님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힘의 기원이며 존재하는 사물과 발생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뉴턴은 종교 저작을 연구하고 해석했으며, 말년에는 신학 공부에 전적으로 매달렸다. 그의 신학 관련 논문 수백 편의 논문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신비적 힘이나 초자연적 힘을 배제하기는 했지만 당시 과학학은 하느님을 향한 일종의 예배 행위였다.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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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라플라스는 천문학 연구에 전 인생을 바쳤고 그의 수학 연구는 순전히 천문학 응용을 위한 것이었다. 이 사실은 그가 수학적 세부 내용에는 신경 쓰기를 꺼렸고 그 응용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수학 분야에서 이룩한 그의 업적은 자연철학 연구 성과의 부산물일 따름이었고, 그것도 다른 사람들을 통해 수학적 엄밀성을 갖추게 되었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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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18세기 사람들에게 세상은 수학적으로 만들어져 있고 또 가장 효과적으로 설계되었으며 하느님이 자연의 설계자라는 증거가 추가로 필요하다면, 그들은 또 다른 수학적 발견에서 그런 증거를 구했다. 헤론은 빛이 점 P에서 점 Q로 반사를 통해 옮겨 갈 때 최단 거리를 택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빌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 최단 거리는 또 최단 시간을 의미한다. 17세기의 위대한 수학자인 페르마는 증거가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최소 시간의 원리를 천명했다. 최소 기간의 원리란, 빛이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옮겨 갈 때 항상 최소 시간이 소요되는 경로를 따른다는 원리이다. 하느님은 빛이 수학적 법칙을 따르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하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다. 페르마는 스넬과 데카르트가 앞서 발견한 빛의 굴절 법칙에서 최소 기간의 원리를 연역해 내면서 이 원리의 올바름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18세기 사람들은 완벽한 우주는 낭비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은 최소한의 노력만을 기울여 원하는 목적을 달성한다고 굳게 믿었고 그에 따라 일반 원리를 찾고자 했다. 그러한 원리를 처음으로 내놓은 사람은 모페르튀였다. 그는
상이한 자연 법칙의 조화
라는 논문에서 그 유명한최소 작용의 원리
를 제시했다. 페르마의 원리에서 출발해 연구를 진행했지만 빛의 속도가 예컨대 공기보다 물에서 더 빠르다는 주장과 더 느리다는 주장 사이에 논란이 끊이지 않자 모페르튀는 작용이란 질량과 속도와 움직인 거리를 곱하고 이를 적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연 현상은 이 작용이 최소가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물리 법칙은 하느님이 창조한 세계에 걸맞은 완벽성을 반드시 지녀야 하는데 최소 작용의 원리는 자연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건을 만족시킨다고 여겼던 것이다. 모페르튀는 자신의 원리가 보편적 자연 법칙이며 하느님의 존재와 지혜를 보여 주는 최초의 과학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p119 -
오일러는 “우주의 구조는 완벽하고 또 가장 현명한 창조자의 작품이기 때문에 최대화난 최소화가 일어나지 않는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 오일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모든 자연 현상은 특정 함수가 최대화되거나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작동하며 따라서 모든 물리학적 기본원리에는 최대화되거나 최소화되는 함수가 있게 마련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하느님은 16세기와 17세기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현명한 수학자가 된 것이다. 오일러의 종교적 신념은 인간에게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하느님이 세워 놓은 법칙을 이해해야 할 임무가 주어졌다는 확신을 심어 주기에 이르렀다. 자연이라는 책은 우리 눈앞에 활짝 펼쳐져 있지만 그 책에 씌어진 언어는 곧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끈기와 사랑과 노력을 기울이면 그 언어를 배울 수 있다. 그 언어란 수학이다. 이 세상은 가능한 것 가운데 최선의 세상이기 때문에 자연 법칙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최소 작용의 원리는 라그랑주에 의해 명확하게 정리되었고, 또 더욱 포괄적인 원리로 일반화되었다. 작용은 본질적으로 에너지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이 일반화도니 원리에서 여러 역학 문제의 해답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최소작용의 원리
는 영국의 제2의 뉴턴이라고 평가받는 윌리엄 로언 해밀턴에 의해 다시 한 번 일반화되었다. 오늘날 이 원리야말로 역학을 지배하는 가장 포괄적인 원리이며, 다른 물리학 분야에서 쓰이는 이와 비슷한 원리, 즉 변분 원리의 패러다임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보겠지만 해밀턴 시대의 사람들은 하느님이 우주를 설계하면서 이 원리들을 심어 놓았다는 모페르튀와 오일러의 주장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의 일단을 볼테르의아카키아 박사의 독설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볼테르는 하느님의 존재 증명을 비웃고 있다. 하지만 18세기 사람들은 그러한 포괄적인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세상이 하느님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증거라고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다. p120 - 라플라스가 말한 다음 구절은 더욱 유명하다.
우주의 현재 상태를 과거의 결과로, 그리고 미래의 원인으로 파악할 수 있다. 특정 시점에 자연 안에 있는 모든 힘과 존재물의 상호 위치를 모두 알고 있는 지적 존재자가 있다면, 그리고 이 지적 존재자가 모든 자료를 분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우주 안에 있는 거대한 별에서 미세한 원자에 이르는 모든 존재물의 운동을 단 하나의 수식으로 압축해 낼 수 있다. 그러한 지적 존재자에게 불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 그에게는 미래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p121
4장 첫 번째 위기: 수학적 진리의 퇴색
시대마다 신화가 있게 마련인데
그 당시에는 그것을 드높은 진리라고 부른다. - 무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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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스, 코시, 푸리에를 위시한 수많은 학자들의 업적은 자연의 참된 법칙들이 속속들이 발견되어 가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여겨졌다. 그리고 실제로 19세기 내내 위대한 수학자들은 선배 학자들이 제시한 길을 따라 연구에 매진하여 더욱 강력한 수학 이론을 만들어 냈고 이 이론들을 자연의 숨겨진 비밀을 캐내는 데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그들은 수학자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설계를 발견해 내는 축복받은 자들이라는 믿음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자연의 수학적 법칙을 찾는 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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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의 우상이 인간 속성에 내재하고 있다. 바로 인간이라는 부족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우상 말이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을 모든 것의 잣대로 잘못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감가가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정신에 의한 것이든 간에, 인식은 우주가 아니라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인간 정신은 고르지 못한 거울과도 비슷해서 자신의 특성을 다른 대상물에 투사하여, 이때 그 모습이 왜곡되고 뒤틀린다.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면서 탁상공론으로 공리를 확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토론이나 논의가 아무리 심오해도 자연의 심오함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신기관 Novum organum(1620)
- 베이컨 p130 -
되돌아보면, 하느님이 자연을 수학적으로 설계했다는 믿음은 바로 수학자들의 연구로 인해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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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작용의 원리는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이 되었지만, 우주의 효율성을 근거로 그 원리가 필연적으로 성립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배격받고 있다. 여러 이유에서 이 주장을 배격하고 있지만 특히 효율성을 지닌다고 생각했던 물리량이 실은 크게 낭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따라서 하느님이 우주를 설계하면서 이러한 물리량의 효율성을 염두에 두었다고 믿기는 어렵다. - 헤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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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은 인간은 정신도 알지 못하고 물질도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 둘 모두가 허상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감각을 지각한다. 이미지나 기억, 생각과 같은 단순한 관념은 감각이 낳는 희미한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복잡한 관념은 단순한 관념들의 집합체일 따름이다. 마음이란 감각들과 관념들의 집합체와 동일하다. 직접 경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실체의 존재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경험은 감각만을 낳을 뿐이다. 흄은 물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회의적인 눈길을 보냈다. 구체적 대상물로 가득 찬 세계가 영원히 존재한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가 오로지 알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세계를 우리가 지각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의자에 대한 감각이 계속 지속된다고 해서 그 의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인과관계도 여러 관념들을 관습적으로 연관지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공간, 시간, 인과 관계 모두 객관적 현실이 아니다. 감각의 힘과 그 생생함에 속아 그러한 현실이 존재하는 양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고정된 속성을 지닌 외부세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어떤 근거도 내세울 수 없다. 우리의 감각이 어디에서 연유되는지는 설명되지 못한다. 외부 물체에 의해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 자체나 하느님에 의해 생기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인간 자신은 지각들, 즉 감각 및 관념으로 이루어진 고립된 집합체일 따름이다. 자아는 여러 상이한 지각들의 다발이다. 자기 자신을 인지하려는 시도는 하나의 지각만을 낳을 뿐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실재한다고 추정하는 외부 세계는 한 사람의 지각일 뿐으로, 실제로 그런 대상물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영원하고 객관적인 물질 세계에 관한 과학 법칙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법칙은 단지 감각을 편의에 따라 정리해 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인과 관계라는 관념은 과학적 증명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흔하게 접하는 여러 ‘사태들’의 순서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습관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인지된 사건 순서가 미래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렇게 해서 흄은 자연 법칙의 불가피성과 영속성, 그리고 불가침성을 허물어 버렸다. p 136 외부 세계가 수학 법칙을 따른다는 주장을 논파함으로써 흄은 현실을 표상하는 논리적 연역 구조의 가치를 파괴했다. 그러나 또한 수학은 수와 기하학에 관한 정리를 담고 있는데, 이런 정리는 수 및 도형에 관해 미리 설정해 놓은 진리로부터 의심할 여지 없이 연역되어 나온다. 흄은 공리를 배격하지는 않았지만 공리와 그로부터 연역되는 결과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공리는 물질 세계에 관한 감각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물질 세계의 존재성은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또 정리는 공리의 필연적 결과이기는 하지만 공리를 좀 더 버니르르한 모습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에 그친다. 정리는 연역된 것이기는 하지만 연역되는 명제는 이미 공리 안에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정리란 동어 반복이다. 따라서 공리나 정리에는 진리가 담겨 있지 않다. 그런 다음, 흄은 인간이 진리를 획득하는 방법에 대해 답한다. 인간은 결코 진리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답이었다. 흄의 철학은 과학 및 수학의 연구와 그 결과를 평가 절하했을 뿐만 아니라 이성의 가치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인간의 드놓은 능력을 부정하는 흄의 철학은 18세기 사상가 대다수에게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수학을 비롯한 인간 이성의 현현을 쓸모없다고 주장하기에는 이로어 놓은 성과가 너무도 많았다. 흄의 철학은 18세기 지식인 대다수에게는 혐오스러운 자가당착으로 비쳤고 수학과 과학의 눈부신 성공과는 합치되지 않는 어불성설이어서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겼다.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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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선험적 진리의 모임이라는 주장에 대해 수학자들로서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칸트가 그런 결론에 어떻게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수학의 명제는 물질 세계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에서 나온다는 칸트의 주장을 수학자들은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았어야 했다. 감각을 조직할 때 항상 동일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끔 인간 정신은 구성되어 있는가? 그리고 공간 감각의 조직화는 필연적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이 되는가? 과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칸트와는 달리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은 외부 세계는 인간 정신과는 독립되어 있는 법칙을 따른다고 여전히 믿고 있었다. 세계는 이성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인간은 단지 그러한 설계를 파악해 내고 이렇게 파악된 내용을 가지고 외부 세계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한다는 것이다. 우주 법칙을 하느님이 세웠다는 주장에 대한 무관심이나 심지어는 그에 대한 부인, 그리고 법칙은 인간 정신의 구조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칸트의 견해는 하느님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하느님은 칸트와 특히 자기 중심적이고 교만하며 자신만만한 수학자들을 벌하기로 작심했다. 그래서 하느님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출현을 촉진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자기 충족적이고 전능한 인간 이성의 모든 업적을 한순간에 허물어 버릴 괴물이었다.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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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가우스는 수학에 전혀 진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듯이 보인다. “복소함수도 모든 수학 구성물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네. 그리고 제시한 정의가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에 그 정의가 합당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정해야 좋은지 물어야 하네.” “ 공간에 관한 이론은 지식 체계에서 순수 수학(수를 기초로 세워진 수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는 전적으로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네. 순수 수학이 담보하고 있는 절대적 확실성을 기하학은 결여하고 있지. 만일 수가 순전히 인간 정신의 산물이라면 공간은 우리 정신 밖에 존재하는 실체이고 따라서 그 법칙을 완벽하게 기술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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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름홀츠는 그의 저서
계산과 측정(1887)
에서 물리 현상에 산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검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산술 법칙 가운데 어떤 것이 적용 가능한지 경험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특정 상황에서 산술 법칙이 적용 가능한지는 선험적으로 알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여러 가지 적절하고 타당한 사실들을 지적했다. 수의 개념은 경험에서 생겨난다. 경험의 종류에 따라 자연수, 분수, 무리수의 개면이 생겨나고 각각의 성질도 도출된다. 이러한 경험에 대해서는 익숙히 알고 있는 수를 적용한다. 우리는 실질적으로 동등한 대상물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며, 따라서 예를 들어 두 마리의 암소란 말을 사용해도 된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이런 대상물들은 사라지거나 하나로 뭉쳐지거나 여러 개로 나뉘면 안 된다. p164 -
주어진 상황에 보통의 산술을 적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오직 경험에만 의존하여 판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산술을 자연 현상에 필연적으로 적용되는 진리들의 집합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리고 대수학과 해석학은 산술의 확장이기 때문에 그런 분야들도 진리의 집합체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수학자들로서는 수학에는 진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여기서 진리라고 함은 실제 세계의 법칙을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산술과 기하학의 기본 구조를 구성하는 공리는 경험에 의거해 채택되므로 그 구조가 갖는 적용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디에 적용 가능한가는 오직 경험에 의거해서만 결정된다. 자명한 진리로부터 출발한 연역적 증명만으로 수학의 참됨을 담보하려던 그리스 인들의 시도는 부질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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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 수학자들은 수학의 공리와 정리가 물질 세계에 관한 필연적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특정 영역의 경험은 특정한 공리들을 채택하게 한다. 그리고 그 공리들과 그 공리들의 논리적 귀결은 그 영역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그 영역이 확대되면 적용 가능성은 소멸될 수도 있다. 물질 세계의 연구에서 수학은 이론이나 모델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론이 기존 이론보다 현상을 더 적합하게 기술한다는 사실이 경험이나 실험으로 입증되면 기존 이론은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된다. 수학과 물질 세계의 관계를 아인슈타인은 1921년에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표현했다. p172
수학 명제들이 현실을 기술하는 한에서는 그 확실성을 담보받지 못한다. 명제들이 확실성을 담보받는 한에서는 그 명제들은 현실을 기술하지 않는다. … 그러나 수학, 특히 그중에서도 기하학은 실제 대상물의 속성을 알려는 우리의 욕구에서 생겨났다는 점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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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진리의 본당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엄청난 반행을 불러왔다. 우서 과학에 끼친 영향부터 살펴보자. 갈릴레오 시대 이후로 과학자들은 최소한 200년 동안은 자신들이 찾아낸 원리가 자연의 설계에 내재되어 있다는 믿음을 견지하기는 했지만 과학의 기본 원리는 수학과는 달리 경험에서 도출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수학도 경험에서 그 원리를 도출해 내며 또 더 이상 그 원리들이 진리라고 주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자 과학자들은 수학의 공리와 정리를 사용하는 한 과학 이론은 그보다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연 법칙은 인간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우주에 질서를 부여한 것이다. 자연 법칙은 인간이 내세우는 설명이지 하느님이 규정한 질서가 아니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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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제임스가 말했듯, “인간의 지적 생활이란 거의 전적으로 경험의 근원이 되는 지각 질서를 개념 질서로 바꿔 내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개념적 질서가 지각 질서를 온전히 담아 내지는 못한다. 진리의 상실로 인류는 지식의 중심과 기준, 사상에서의 확립된 권위를 잃고 말았다. “인간 이성에 대한 자부심”은 추락했고 그 추락과 함께 진리의 전당도 파괴되었다. 역사가 남긴 교훈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 확고한 진리라고 해도 그것을 교조적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확고한 진리로 여겨지는 것들이 실은 가장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그것들은 인류의 탁월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한계와 제약을 드러낼 따름이다. p176
5장 논리적 주제의 비논리적 발전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라.
우리에게 남겨진 것에서 힘을 얻으리니.
- 워즈워드
- 지난 2000년 동안 수학자들은 자연의 수학적 짜임새를 매우 성공적으로 밝혀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수학 법칙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자연과학의 수학 법칙들은 놀라울 만큼 정확했기 때문에 수학적 논증에 대한 일부 이견이 있었지만 철저히 무시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추론에 본질적인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19세기 초엽에 미적분학의 엄밀성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이 비판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면서 일부 사람들은 이미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리에 대한 주장을 포기하게 한 것은 수학자 스스로 만들어 낸 창보물, 바로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사원수였다. 이 창조물로 인해 수학자들은 심각한 논리상의 난점에 직면하게 된다. p181
- 이렇게 그리스 인들은 서로 상이한 두 가지 수학 분야를 후세에 남겨 놓았다. 한쪽에는 다소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연역적이고 조직적인 기하학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경험적인 산술과 그것을 확장하여 얻은 대수학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이 수학적 결과는 명백한 공리에서 연역적 방법으로 얻어 내야 한다고 여겼던 사정을 생각해볼 때, 논리적 구조를 지니지 않은 독립된 산술과 대수학의 출현은 수학 역사상 가장 큰 이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p195
- 인도 및 아라비아 수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특성은 수학에 대해 갖고 있는 그들의 개념이었다. 이집트 인들과 바빌로니아 인들이 경험을 근거로 하여 산술 및 기하학 규칙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점은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경험이야말로 거의 모든 인간 지식의 자연스러운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인과 아라비아 인은 그리스 인이 제시한 수학적 증명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산술과 대수에서 그들은 연역적 증명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p199
- 인도인들과 아리비아 인들은 산술과 대수, 그리고 삼각법의 대수적 관계식을 선호했다. 이러한 경향은 상이한 의식 구조에서 연유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문명의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표출된 것일 수도 있다. 두 문명 모두 실용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고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그리스 인들과 관련해 실용적 필요성은 계량적 결과를 요구하는데, 바로 산술과 대수학이 이러한 계량적 결과를 제공해 준다. p200
- 대다수의 수학자들은 실용 목적으로 대수학을 자유로이 사용했다. 대수학은 모든 종류의 실용 문제를 다룬다는 점과 기하학적 문제를 다룰 때에도 대수학이 더 효율적이라는 점이 명백해지면서 수학자들은 대수학의 세계에 몸을 담그게 되었다. p219
- 어떻게 그리스의 연역 기하학에 익숙한 유렵인들이 논리적으로 불안정한 여러 유형의 수와 대수를 거리낌 없이 이용하고 적용할 수 있었을까? 첫째는 자연수와 분수의 성질을 받아들이는 근거는 분명코 경험이었다. 기하학이 사용되었어도 음수, 무리수, 복소수에 대한 논리적 기초를 제공해 주지 못했다. 분명히, 4차 방정식의 해법 같은 경우는 기하학적으로 증명해 내기 불가능했다. 두 번째로 대수학 성립 초기, 나름의 논리적 기초가 요구되는 독립된 수학 분야로 인정받지 못하고 기하학적인 문제를 분석하는 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은 수학자들에게 대수학의 강력한 힘을 각인시킨 결정적 도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음수 및 무리수의 사용과 대수학의 사용으로 얻은 과학 연구 결과는 관찰 및 실험 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예컨대 수학자들이 음수를 도입하면서 가지게 된 의구심은 수학적 결과가 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입증되자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과학에의 응용이 주요 관심사였기 때문에 그 방면에서 효용성을 보이는 수단이나 도구는 거리낌 없이 채택되었다. 과학의 실용적 요구가 완벽함을 추구하는 논리적 요구를 압도했다. p221
6장 비논리적 발전: 해석학이라는 수렁
누구나 어떤 방향으로든 우선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시작은 항상 불완전하며 또 실패로 마무리되는 일이 많다.
꼭꼭 숨겨져 있어 모든 길을 다 가 본 후에야
최선의 길을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진리들이 있다.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반드시 잘못된 길로 들어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오류를 경험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이다.
- 드니 디드로
- 논리적 기초가 결여된 산술 및 대수학, 그리고 다소 불안정한 기초를 지닌 유클리드 기하학. 수학자들은 이 두 가지 위에 해석학을 건설했다. 해석학의 핵심 내용은 미적분학이며, 미적분학은 가장 정교한 수학 이론이다. 우리는 앞에서 비교적 단순한 분야인 대수학에서 여러 결함을 목격했다. 이와 비교해 볼 때, 미적분학의 개념을 밝히고 논리적 구조를 세우는 일은 수학자들에게 만만치 않은 지적 부담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p227
- 미적분학의 논리적 기초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뉴턴의 연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궁극적 비를 언급했고 그 반면에 라이프니츠의 추종자들은 무한소와 무한히 작지만 0은 아닌 양을 사용했다. 이렇게 접근 방식이 서로 상이했기 때문에 적절한 논리적 기초를 세우는 일은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 p247
- 혼한과 불안과 적의에도 불구하고 18세기의 위대한 수학자들은 미적분학을 크게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켰다. 무한 급수, 상미분방정식과 편미분방정식, 변분법, 복소함수론 등, 오늘날 수학의 핵심을 이루는 분야가 탄생했는데 이 모든 것을 통틀어 해석학(Analysis)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p248
- 뉴턴, 라이프니츠, 베르누이 일가, 오일러, 달랑베르, 라그랑주, 그리고 그 밖의 18세기 학자들이 무한 급수라는 이상스러운 문제와 씨름하고 또 해석학에 수용하면서 온갖 종류의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질렀고 잘못된 증명과 옳지 않은 결론을 내놓았다.p250
-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그토록 까다로운 수학자들이 과연 자신들의 학문에서도 그런 엄밀함을 유지하는가? 그들 역시 권위에 굴복해 따져 보지도 않고 받아들이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을 덮어 놓고 믿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에게는 과연 미몽이 없으며 자가당착과 모순은 없는가? “ 버클리 p264
- “우리 학술원으로 다수의 논문이 접수되었으나 만족할 만한 응답을 얻어 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한은 인간 정신을 삼켜 버린 심연이다’ 라는 부제를 단 프랑스 어 논문의 저자가 우리 학술원의 의도에 가장 근접해 있다. 따라서 우리 학술원은 그에게 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베를린 과학학술원
- 볼테르는 미적분학을 두고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도 없으면서도 그것을 셈하고 측정하는 기법”이라고 했다. p266
7장 비논리적 발전: 1800년경의 상황
오, 신이시여,
왜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되어야 합니까?
- 알렌산더 포프
- 1800년이 되면서 수학은 매우 역설적인 상화을 맞게 되었다. 물리 현상의 설명과 예측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수의 18세기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이 거대한 구조물은 노리적 기초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수학이 올바르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이러한 역설적 상황은 19세기 전반까지 계속되었다. 수많은 수학자들이 새로운 과학 영역에 손을 대어 더욱 위대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논리적 기초에 대해서는 노ㅕㄹㄱ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음수와 복소수, 대수학, 미적분학과 해석학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었다. p271
- 피콕이 주장한 동등 수식 불변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자의적이었다. 그리고 이 원리는 왜 다양한 유형의 수들이 자연수와 같은 성질을 갖느냐 하는 문제를 낳았다. 경험적으로는 옳지만 논리적으로는 확정되지 않은 사실에 의거한 원리였던 것이다. 버클리가 말했듯이, “오래되고 뿌리 깊은 편견이 원리로 통용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 주장들과 명제들은 어떤 검토나 이의제기로부터 면제된다.” p281
- 수학자들은 이제 현실 세계에서 아이디어를 끄집어내 추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창출해 내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아이디어의 근원을 감각으로 돌렸으나 이제는 지적 능력이 그 근원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개념들이 응용에서 더욱더 쓰임새가 넓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처음에는 마지못해 받아들였으나 어느덧 그 개념들에 친숙해지면서 경멸감보다는 무비판적 태도와 자연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생겨났다. 1700년 이후로 자연이 아니라 인간정신에서 솟아난 개념들이 수학 영역으로 들어왔고, 또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 개념들이 받아들여졌다. 수학자들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날개를 달고 단단한 대지로부터 유리된 위치에서 수학이라는 학문을 바라다보게 된 것이다. p293
- 그렇다면 어떻게 수학자들은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지 알았는가? 또 어떻게 감히 증명을 강조하는 전통이 있는데도 규칙을 단순 적용해 얻은 결론의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일까? 물리학 문제의 해결이 목표를 설정해 주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단 물리학 문제가 수학적으로 정식화되고 나자 새로운 기법이 생겨났고 또 새로운 방법론과 결과 출현했다. 수학이 지니는 물리학적 의미가 수학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었으며 또 종종 추론 과정을 보완해 주기도 앴다. p294
- 물리학 문제의 정수를 수학으로 형상화하고 나자 수학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18세기 수학자들은 수식에 매료되었다. 기호에 대한 집착은 이성을 압도하고 마비시켰다. 수학사에서 18세기는 영웅 시대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수학자들이 부실한 논리적 무기를 가지고 위대한 과학적 성과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p294
-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다. 미적분학의 개념이 모호하고 또 증명도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수학자들, 특히 18세기 수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결과가 올바르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부분적인 답은 많은 결과들이 경험과 관착을 통해 그 타당성을 확인 받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두드러진 사례가 바로 천문 예측이었다. p295
- 17세기와 18세기 수학자들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가 옳다는 확신을 가져다 주었다. 수학자들이, 하느님이 세상을 수학적으로 설계했으며 수학자는 그 설계를 발견하고 또 그것을 드러낸다고 확신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때의 수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단편이었지만 그들은 그것이 진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하느님이 만든 작품을 발견해 나가고 있으며 마침내 완전하고 연원한 진리의 약속된 땅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그들의 영혼을 지탱해 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풍성한 과학적 성과는 만나가 되어 그들의 정신에 자양분을 제공하고 생명을 유지시켜 주었다. p295
- 과학적 증거에 따라 지지되는 종교적 확신이 허약한 논리, 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논리적 힘을 대체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진리를 확보하려는 열망이 너무도 강했기 떄문에 논리적 기초 없이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성공으로 인해 그들의 분별력은 약화되었다. 성공의 열매가 너무도 달콤해 이론과 엄밀성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때때로 철학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독단론이 등장하여 어려움의 실상을 가렸기 때문에 더 이상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p296
- 사람들 가운데는 슬픔을 술로 달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수학자들 가운데는 물리학적 성공에 도취되는 것으로는 수학의 비논리적 상태에 대한 우려를 달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다. 하느님의 계획을 발견해 내고 있다는 믿음이 얼마간 위안을 주었지만 18세기 후반 들어 그러한 믿음을 포기하면서 그 위안도 소용없게 되었다. 그런 지지와 성원이 사라지자 그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모호함, 증명의 부재, 기존 증명의 부적절함, 모순, 그리고 혼란을 보았다. 그들은 수학이 그동안 얻고 있던 명성과는 다르게 이성의 모범이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성의 자리에는 직관, 기하학적 도형, 물리학적 논증, 동등 수식 불변의 원리, 형이상학에 의존한 정당화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p298
8장 비논리적 발전: 낙원의 문턱에 서다
이제 완벽한 엄밀성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 앙리 푸엥카레
- 수학에서 이른바 비판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은 수학자들이 지난 2000여 년 동안 직관, 그럴싸한 주장, 귀납적 추론, 기호들의 기계적 조작 등으로 점철된 광야 속에서 방황해 왔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수학에서 논리적 기초가 전혀 없는 곳에는 적절한 논리적 기초를 세우고, 모호한 개념과 모순을 제거하고, 유클리드 기하학처럼 논리적 기초가 이미 마련되어 있는 곳은 그 기초를 더욱 공고히 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계획은 1810년대에 시작되었다. p303
- 수학이 왜 이렇듯 눈부시게 자연 연구에 응용될 수 있는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뛰어난 응용력을 부정할 수 없었으며 또 그토록 강력한 도구를 감히 내버리지 못했다. 이런 힘이 논리적 난점이나 모순 때문에 약화되어서는 곤란했다. 더구나 수학자들은 논리적 타당성을 경시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세워 놓은 원칙을 어겨왔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용성이라는 기준으로 수학을 판단하도록 놓아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의 위신은 크게 추락할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숭고한 정신 활동과 땅을 파는 기술자나 장인의 활동을 구별해 줄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 p304
- 수학자들은 미적분학의 논리를 세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미적분학은 실수 체계와 대수학을 전제로 하여 출발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논리적 기초를 결여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불합리한 모습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 비유할 수 있었다. 50층짜리 사무용 빌딩이 입주자들과 가구, 그리고 갖가지 설비로 가득 차자 소유주는 빌딩의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건물을 개축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는 20층에서부터 개축하려고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실, 유클리드 기하학은 2000년 동안이나 유용하게 활용되었기 때문에 논리가 다소 허술해도 충분히 용인되었다. 그러나 해석학의 원류인 미적분학은 분야도 광대한 데다가 엉성한 증명, 역설, 그리고 모순까지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결과가 실용적 가치를 지녔던 것도 아니었다. p304
- 수 체계의 기초 확립은 대수학 기초 문제 해결이라는 부수적 결과를 낳았다. 문자들을 마치 양의 정수처럼 자유로이 조작했을 때 문자들에 실수나 복소수를 대입해도 여전히 그 결과가 성립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다른 유형의 수들도 양의 정수와 동일한 형식적 성질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p314
- 논리학이란 학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오르가논:기원전 300년경>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수학자들이 사용하는 추론의 원리를 살펴서 이로부터 핵심 내용을 추상화했고, 이렇게 해서 얻은 원리들은 모든 추론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그런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가 배중률이다. 배중률은 의미 있는 모든 진술은 참이거나 아니면 거짓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배중률을 “정수는 홀수이거나 짝수이다.”와 같은 수학 명제에서 추출해 냈을 것이다. 그리고 주로 삼단논법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구성하고 있다. p319
- 수학의 무모순성 문제는 그리스 시대ㅐ에도 이미 다루어졌다. 그런데 왜 19세기 후반에 그 문제가 전면으로 떠오른 것일까?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탄생으로 사람들은 수학이 인간의 창조물이며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근사적으로만 기술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데에는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우주의 내적 구조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진리라고 할 수 없었고, 따라서 반드시 무모순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실제로 19세기 후반의 공리화 운동은 수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과 실제 세계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있음을 깨닫게 했다. 모든 공리 체계에는 무정의 술어가 있고 그 무정의 술어의 속성은 오직 공리를 통해서만 규정된다. 직관적으로는 수, 점, 직선에 대한 의미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술어들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공리가 이들의 속성을 고정해 주어 우리가 직관적으로 결부시키는 속성을 갖게 해 준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또 원하지 않은 속성이나 모순을 낳는 속성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p336
9장 실낙원: 이성의 새로운 위기
수학에서는 진정한 노란이란 없다 - 가우스
논리학이란 확신을 갖고 오류를 범하는 기술이다. - 무명씨
- 칸토어의 집합론은 다른 여러 수학 분야에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또 수학자들은 칸토어와 데데킨트는 집합론이 자연수 이론을 세우고 곡선 및 차원의 개념을 분석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으며 심지어 모든 수학 분야의 기초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는 얼마든지 큰 초한 집합이 있고 또 거기에 대응하는 초한수(transfinite number)가 있음을 보였다. 1895년에 칸토어는 모든 집합들의 집합에 대해 생각했다. 그 집합의 원소 개수는 존재하는 수 가운데 가장 큰 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칸토어는 주어진 집합의 부분 집합으로 이루어진 집합의 초한수가 본래 집합의 초한수보다 크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따라서 최대 초한수보다 더 큰 초한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칸토어는 이 난점을 피하기 위해 이른바 무모순 집합과 모순 집합을 구분했다. 그리고 1899년에 데데킨트에게 보낸 편지에 그 내용을 썼다. 즉 모든 집합의 집합이나 그 원소 개수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p354
- 러셀의 역설은 집합에 대한 것이다. 책들의 집합은 책이 아니며, 따라서 자기 자신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념들의 집합은 그 자체가 하나의 관념이므로 자기 자신에 속한다. 또 목록들의 목록은 그 역시 목록이다. 이렇게 어떤 집합은 자기 자신에 속하고 또 어떤 집합은 자기 자신에 속하지 않는다. 러셀이 이 역설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 난점은 수학 자체가 아니라 논리학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역설은 바로 대상물들의 집합이라는 개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집합이라는 개념은 수학 전체에 널리 쓰이는 개념이었다. 힐베르트는 이 역설이 수학에 파국적인 영향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p360
- 러셀은 1918년에 이율배반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해 냈는데, 이는 ‘이발사의 역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마을 이발사는 스스로 면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면도를 해 주지 않지만 스스로 면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면도를 해 준다. 그 마을에 이발사는 오직 그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이발사는 스스로 면도를 해야 할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만일 자신이 스스로 면도를 하려 한다면 스스로 면도하는 사람에게는 면도를 해 주지 않겠다고 했으므로 규칙을 깨는 게 된다. 그러나 만일 스스로 면도를 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에게 면도를 해 주겠다고 했으므로 면도를 해야 한다. 이발사는 논리적 곤경에 빠진 것이다. p360
- 역설과 관련된 재귀 서술 정의가 역설을 결과로 내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학자들은 모든 재귀 서술 정의가 꼭 모순을 낳지는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당혹감을 느꼈다. … 불행히도 어떤 재귀 서술 정의가 문제를 일으키고 또 어떤 것이 그렇지 않는지 결정하는 기준은 없다. 따라서 모순을 결과로 내놓는 재귀 서술 정의가 더 많이 발견될 위험성이 있었다. p365
- 모순의 주요 요인은 명확해 보였지만 그런 모순들을 없애기 위해서 수학을 어떻게 건설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또 새로운 모순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더욱 중요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수학자들은 모순을 집합론의 역설로 돌렸다. 하지만 집합론에서의 연구 성과 덕분에 그들은 기존 수학에서도 모순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견고한 수학의 기초를 확립하려는 노력에서 무모순성을 확보하는 일은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p366
- 플라톤주의자들은 관념을 인간과는 무관한 어떤 객관적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인간이 이러한 관념을 발견했거나, 플라톤의 표현을 빌리면, 그 관념들을 상기해 냈다고 주장했다. p374
- 존재 문제의 다른 측면은 존재 증명의 가치였다. 예컨대 가우스는 실수 계수나 복소수 계수를 갖는 n차 방정식은 한 개 이상의 근을 가진다고 증명했다. 하지만 이 증명은 근을 어떻게 구하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p375
- 훨씬 더 중요한 것은, 1800년대 말에는 분명하게 표명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수학자들이 논리학 원리를 제한 없이 적용하는 데에 대해 의구심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무한 집합에도 논리학 원리를 적용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논리학 원리가 인간 경험의 산물이라면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은 심적 구성물에까지 확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논락ㄴ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p376
- 여러 해가 지나고 수학자들은 모순이 발견되기 이전의 짧았지만 행복했던 시적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때를 되돌아보며 뒤부아레몽은 당시를 “우리가 낙원에 살았던 시절” 이라고 묘사했다. p376
10장 논리주의 대 직관주의
기호논리학은 불모의 분야가 아니다.
기호 논리학은 바로 이율배반을 낳았다.
- 앙리 푸앵카레
- 집합론에서 역설들이 발견되고, 유사한 역설이 기존 수학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수학자들은 무모순성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존재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는 특히 선택 공리 사용과 관련해 제기되었는데, 이 역시 격렬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기초를 다시 세우고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무한 집합의 사용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실제 무한 집합이 합당한 개념이냐를 두고 벌였던 해묵은 논쟁이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19세기 공리화 운동은 이 문제들을 다루지 않았다. p379
- 논리학파의 기본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수학의 모든 것은 논리학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00년대 초에 논리학 법칙은 대다수 수학자들에 의해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따라서 논리학자들은 수학 역시 진리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진리는 무모순이므로 수학도 무소순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p380
- 만일 수학의 내용이 순전히 논리학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면 어떻게 새로운 개념이 수학으로 들어오고 또 수학이 물질 세계에 응용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느냐 하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게 된다. 러셀이이나 화이트헤드도 이에 대해 답을 내놓지 않았다. 논리주의는 수학이 물질 세계와 합치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기본 물리학 원리에 수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들어 반박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pv = nRt
나F = ma
같은 물리학 원리에서 수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명제를 이끌어 낸다. 그런데 이렇게 이끌어 낸 결론은 여전히 물질 세계에 적용된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하나 있다. 왜 세계는 수학적 추론을 따르는 것일까? p398 - “내가 항상 수학에서 찾고자 했던 드높은 확실성은 당혹스러운 미로 속에서 행방불명되었다. 그것은 참으로 복잡하기만 한 개념의 미로이다.” - 러셀 p401
- 논리학이 진리의 집합체이고 따라서 논리학 위에 수학을 세우면 수학 역시 진리의 집합체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반면에 같은 목표를 추구한 직관주의자는 인간 마음에 호소함으로써 수학의 참됨을 확보하고자 했다. 논리학 원리로부터 유도된 명제는 직접적 직관으로 얻어 낸 명제에 비해 신뢰성이 떨어진다. 역설의 발견은 이러한 불신을 확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직관주의의 형셩을 가속화했다. p402
차츰차츰 맹신과 오류를 사실로부터 제거해 내고 진리에서 망상을 없앤다. 그렇게 남겨진 것을 부여잡고 굶어죽는다.
- 사무엘 호펜슈타인 (시인) 419p
제 경우, 문어든 구어든 언어는 사고 메커니즘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 사고의 구성 요소가 되는 물리적 실체는 마음껏 재생할 수 있고 결합할 수 있는 표산과 어느 정도 선명한 이미지입니다. … 제 경우,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은 강렬한 시각적 형태를 취합니다. 부차적인 상태에서만 통상적인 언어나 여타의 기호를 열심히 찾아야 합니다.
- 아인슈타인 423p
- 직관주의자들은 수학에 제약을 가했고 또 그들의 철학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직관주의는 수학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애초에 선택 공리와 관련해서만 심각하게 논의되던 문제가 직관주의 덕분에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화두가 되었다. 그 문제란 수학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바일이 물었듯이 특정한 성질을 갖는 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실제로 그 수를 계산해 내지 못한다면 과연 소용이 있는 것일까? 배중률을 별 생각없이 자유로이 확장하여 사용하는 것은 분명 재고가 필요해졌다. 직관주의의 성과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모순이 도출된다는 점을 보임으로써 존재성을 확립한 수나 함수에 대해서 그 값을 명확히 계산해 내라고 요구한 점이다. p424
11장 형식주의와 집합론
현대 수학의 광대함에 비춰 볼 때
직관주의자들이 얻어 낸 초라한 파편,
불완전하고 고립되어 있는 결과들이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닐 것인가?
- 다비트 힐베르트
- 20세기의 첫 10년 동안에 수학 기초론에서 논리주이 철학과 직관주의 철학이 생겨나 서로 대척점에 서서 대립했다. 하지만 치열한 싸움은 이들로만 그치지 않았다. 형식주의라는 이름의 세 번째 학파가 힐베르트에 의해 만들어졌고, 또 집합론 학파가 체르멜로에 의해 생겨났다. 1900년 세게 수학자 대회에서 행한 강연에서 힐베르트는 수학의 무모순성을 증명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p429
- 직관주의 철학은 힐베르트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왜냐하면 직관주의자들은 무한 집합을 배격했을 뿐만 아니라 존재 증명에 의존하는 해석학의 상당 부분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직관주의를 격렬하게 공격했다. p430
- 형식주의자들에게 수학은 형식 체계들의 모임이다. 각 체계는 수학적 내용과 더불어 각자의 논리학을 세워 놓고 있으며, 각자의 개념과 각자의 공리와 각자의 연역 법칙과 각자의 정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연역 체계의 전개가 수학의 임무이다. 이것이 바로 수학을 구성하기 위한 힐베르트의 계획안이었다. 하지만 공리에서 연역된 결과는 역설로부터 안전한가? p435
- “우리가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하거나 또는 말하는 바가 옳은지 알지 못하는 분야가 바로 수학이다.” - 러셀
- “수학적 엄밀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두 부류가 서로 다른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직관주의자들은 인간 이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답합니다. 그런데 형식주의자들은 종이 위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 브라우베르 p441
- 1800년, 논리적 전개에서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수학은 완벽한 학문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수학은 절대 무오류의 의심할 수 없는 추론으로 결론을 확립하는 과학이며, 또 이렇게 얻어 낸 결론은 오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진리이기도 하고 또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듯히 모든 가능한 우주의 진리이기도 하다는 생각은 설득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참된 추론 원리에 대한 여러 기초론 학파들의 상충되는 주장으로 손상을 입었다. 인간 이성에 대한 자부심은 크게 꺾일 위기에 놓여 있었다. p448
12장 대재앙
- 지금 되돌아보면, 1930년대 수학의 기초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알려진 역설들은 이미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수학자들의 마음을 괴롭혔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수학의 무모순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알려진 역설은 해결했지만 새로운 역설이 나올 위험성은 여전히 있었다. 두 번쨰 문제는 이른바 완비성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한 분야가 완비성을 갖추었다는 것은 그 분야의 개념들을 다루는 의미 있는 주장에 대해 항상 참 또는 거짓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공리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p453
- 힐베르트는 자신이 만든 메타 수학 즉 증명 이론이 모든 수학 분야의 무모순성과 완비성을 확립해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바로 그 이듬해에 괴델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또 다른 논문을 출간했다. [수학원리 및 관련 체계에서 형식적으로 결정될 수 없는 명제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놀라운 결과 두 가지를 담고 있었다. 두 결과 가운데 수학계에 더욱 큰 충격을 안겨 준 것은, 자연수의 산술을 포함할 정도로 큰 수학 체계의 무모순성은 논리주의, 형식주의, 집합론 등 여러 학파에서 채택한 논리학 원리로 확립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와 못지않게 놀라운 것이 이 결과의 따름정리(corollary)이다. 이 두 번쨰 결과를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라고 부르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일 자연수 이론을 포함하는 형식 이론 T가 무모순이면 T는 불완비하다. 이는 의미 있는 수론 명제 S가 있을 경우 S와 S의 부정 모두 그 이론 내에서 증명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S가 참이거나 아니면 S의 부정이 참이다. 따라서 수론에는 증명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존재하고, 이 명제는 결정 불가능이 된다. 그의 공리는 무모순성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불완비성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결정 불가능 명제 가운데 일부는 위에서 언급한 형식 체계의 논리를 초월하는 논증, 즉 추론 법칙으로 참임을 보일 수 있다. p458
-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는, 괴델이 사용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산술화될 수 있는 수학 공리 체계나 논리학 공리 체계는 수학의 모든 분야는 고사하고 한 가지 체계의 진리를 모두 포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공리 체계는 불완비하기 떄문이다. 이 체계들에 속하지만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될 수 없는 유의미한 명제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 명제들은 비형식 논증으로 참임을 보일 수 있다. 공리화에 한계가 있다는 이 결과는 수학이 곧 공리화된 분야들의 집합체라는 19세기 견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괴델의 결과는 포괄적 공리화에 치명타를 안겨 주었다. 공리적 방법의 부적절성은 그 자체로는 모순이 아니지만, 수학자들, 그 중에서도 형식주의자들은 모든 참인 명제는 그 공리 체계 한에서 확립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p461
-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가 공리 체계는 해당 수학 분야에 속하는 모든 정리를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반면에,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는 공리 체계가 의도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델을 허용하게 된다고 말한다. 공리들은 모델을 제한하지 않는다. 따라서 수학적 실체를 공리체계 안에 오해의 가능성이 없도록 새겨 넣기란 불가능하다. 의도하지 않은 모델이 생기는 이유는 공리 체계에 무정의 술어가 들어 있기 떄문이다. p474
- 불완비성이 비정언성을 함의한다. 그러나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는 훨씬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정언성을 부정한다. 새로운 공리를 추가하지 않고서도 극단적으로 상이한 모델들이 존재함을 입증했다. p475
- 1900년 이후의 수학 기초론의 전개 과정은 당혹스러우며 현재 수학이 처해 있는 상황은 혼란스럽고 또 개탄스럽다. 진리의 빛은 더이상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 주지 않는다. 그 증명에 간혹 수정이 요구되기는 했지만 이성의 정점으로 여겨졌고 또 모은 이의 찬탄을 한몸에 받던 수학의 자리에 이제는 여러 수학 연구 방식들이 들어서서 서로 다투고 있다. p479
- 20세기 수학 기초론의 발전 과정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적절하게 요약될 수 있을 듯싶다. 라인 강둑에 수백 년 된 아름다운 성이 서 있다. 성 지하에 사는 부지런한 거미들이 거미줄로 거미집을 정교하게 지어 놓았다. 어느 날 세찬 바람이 불어 거미집이 부서졌다. 거미들은 미친 듯이 실을 뽑아 거미집을 고쳤다. 그것은 거미들이 성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지탱해 주는 것은 자기들이 지은 거미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482
13장 수학의 고립
나는 추상기하학 연구를 포기하기로 했다.
추상기하학에서는 정신 훈련만을 목적으로 하는
문제들만이 다루어지고 있다.
추상기하학 연구를 포기하기로 한 것은
자연 현상의 설명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기하학을 연구하기 위해서이다.
- 르네 데카르트
- 수학의 역사는 찬란하게 빛나는 업적들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재앙의 역사이기도 하다. 진리의 상실은 가장 큰 비극이다. 진리는 인간의 가장 귀중한 재산이며 한 조각의 진리를 잃는 것만으로도 슬픔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인간 이성의 눈부신 진열장에 완벽한 구조물이 아니라 결함투성이에, 언제 모순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런 진열물이 놓여 있다는 꺠달음은 수학의 위상에 또 다른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고통의 원인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불길한 예감과 수학자들 사이에 이견은 지난 100년 동안 수학이 거쳐 온 연구 경향에 그 원인을 두고 있었다.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바깥 세계에 눈을 닫고 수학 안에서 생겨나는 문제에 집중했다. 그들은 과학을 내동댕이쳤다. 이런 방향 전환은 흔히 응용 수학에서 순수 수학으로 눈을 돌린 것이라고 표현되고는 한다. p485
- 수학은 그 특유의 추상성 떄문에 한 번에 다양한 물리 현상을 기술할 수 있다. 예컨대 물결, 음파, 전파 모두 파동 방정식이라는 편미분 방정식 하나로 기술된다. 애초에 물결 연구에서 얻은 파동 방정식 자체를 연구하여 추가로 얻어 낸 수학적 지식은, 예컨대 전파연구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실제 세계의 문제들에 자극받아 만들어진 풍성한 연구 성과는 상이한 상황에서도 동일한 수학적 구조가 있음을 꺠달을 때 더욱더 강화되고 그 의미 또한 분명해진다. p486
- 수학만을 위한 수학이라는 순수 수학에 대한 비판은 베이컨의 <학문의 진보(1620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그는 신비주의적이고 자기 충적적인 순수 수학을 “사물과 자연철학의 자명한 진리로부터 완전히 유리되어 있으며 오직 인간 정신에 수반되는 탁상공론과 명상의 욕구만을 채워 줄 따름이다.”라며 반대했다. p496
- 푸리에는 물리학 문제에 수학을 응용하려는 뜻을 열정적으로 표명했다. “자연에 관한 깊이 있는 연구는 수학적 발견의 가장 풍부한 보고이다. 자연을 깊이 연구하면 명확한 목표 설정이라는 긍정적 효과뿐만 아니라 모호한 문제와 무익한 계산을 없애는 이점도 얻는다. 수학은 분석 자체를 구성해 내는 수단이며, 과학이 항상 추구해야 할 중요한 아이디어의 발견 수단이다. 기본이 되는 아이디어는 자연 현상을 그려내는 것들이다. … 수학적 분석은 이러한 현상 안에 숨어 있는 법칙들을 포착해 낼 수 있게 해 준다. 수학은 이런 현상들을 분명하게 파악하게 하고 또 측정할 수 있게 한다. 수학이야말로 짧은 삶과 불완전한 감각을 보완해 주는 인간 이성의 능력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모든 현상을 연구할 때 수학은 동일한 방법을 따른다는 사실이다. 수학은 마치 우주의 계획이 지니는 통일성과 간결성을 증명하려는 듯, 또 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불변의 질서를 더욱 명료하게 하려는 듯, 이 현상들을 동일한 언어로 해석해 낸다. p497
- 푸엥카레는 <과학의 가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의 역사를 완전히 망각하지 않는 이상, 자연을 이해하려는 욕구가 수학 발전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축복할 만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 외부 세계의 존재를 잊는 순수 수학자는, 색채와 형태를 조화롭게 결합할 줄 알지만 그릴 모델을 찾지 못하는 화가와도 같다. 그런 사람의 창조적 힘은 곧 소진되고 만다." p499과학의>
- 클라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시대의 수학은 평화로운 시기에 가동되고 있는 거대한 무기 공장과 비슷해 보인다. 진열장을 가득 채운 뛰어난 솜씨의 퍼레이드가 전문가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런 물품을 필요로 하는 진정한 이유와 목적, 즉 전투를 해서 적을 물리치는 일은 의식의 한구석으로 물러나 아예 망각의 늪으로 사라졌다.” p500
- 1939년에 쿠란트는 이렇게 썼다. “수학은 정의와 공준에서 이끌어 낸 결론들의 체계에 불과하며, 공준이 무모순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에서 수학자들이 자유롭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주장은 과학 자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만일 수학이 그러하다면 지적인 사람 가운데 수학에 관심을 기울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학은 동기나 목표가 없이 정의, 규칙, 삼단논법 등을 가지고 유희를 벌이는 게임에 불과할 것이다. 지성이 의미 있는 공리 체계를 자유로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람들을 오도할 수 있는 반쪽짜리 진리일 따름이다. 유기적인 전체를 고려하는 자세를 취할 때, 그리고 내적 필요에 부응할 때에만 자유로운 마음은 과학적 가치를 지니는 결과를 성취해 낼 수 있다. p501
- 수리물리학자인 존 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수 집단은 다수 집단의 성과를 폄하하려 하지는 않지만 수학 자체를 위한 수학이 곧 수학 자체를 고시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수학이 미래에 끼칠 영향을 차치하더라도 수학자들의 고립으로 여타의 과학들은 든든한 후원자를 잃는 피해를 입었다. …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을 따름이다. … 물리학은 수학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수학이 물리학에서 사라진 후에도 (만약에 사라진다면) 오랫동안 물리학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00년 뒤에는 엄청난 양의 사실을 수집하고 발견하는 더욱 크고 더욱 훌륭한 실험실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수집된 사실들이 그저 사실 차원에 머물지, 아니면 과학이 돌리는 수학의 정신과 얼마만큼 접촉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p504
- 애초에 순수 수학으로 생겨났지만 이후에 응용 가능성이 확인되었다고 여겨지던 분야들이 그 역사를 살펴보면 실제로는 물리학 문제나 물리학 문제와 직접 연관된 주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애초에 물리적 문제 해결이라는 동기에서 출발한 수학이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응용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렇게 수학은 과학에 신세를 갚는 것이다. 애초에 돌을 깨기 위해 만들었던 망치가 나무에 못을 박을 때에도 쓰인다고 해서 놀랄 이유가 있을까? 수학 이론이 기대하지도 않았던 곳에 응용되는 것은 그 이론이 애초에 물리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지 내면의 영혼과 씨름하는 현명한 수학자의 예언자적 통찰력 덕분은 절대 아니다. 수학 이론들이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응용되고 있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p512
- 흔히 수학은 비옥한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로 비유된다. … 흙을 완전히 없애면서 나무, 뿌리, 몸통, 상부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노력은 성공할 수 없다. 뿌리가 비옥한 토양 깊숙이 파고들 때에만 가지는 무성함을 자랑할 수 있다. 현실이라는 자양분을 받지 못하는 새 가지에 접을 붙이면 죽은 가지만을 얻을 따름이다. p517
- 폰 노이만은 수필 <수학자>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수학에서 가장 훌륭한 영감이 누가 봐도 순수 수학 분야에 속하는 내용이라고 해도 자연과학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내 생각으로는 수학에서 가장 특징적인 사실은 자연과학, 좀 더 일반적으로는 기술적 수준 이상으로 경험을 해석하는 과학과 매우 기묘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p518수학자>
- 응용 수학자는 엄밀한 증명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연구 결과가 물리적 사태와 합치되느냐 하는 것이 그들의 주요 관심사이다. p521
- 응용 수학의 문제는 물리적 현상에 의해 설정되고 응용 수학자들은 그 문제 해결을 시도하지만, 순수 수학자는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낸다. 그런 순수 수학자를 두고 응용 수학자들은, 어두운 골목에서 열쇠를 잃어버려 놓고 환해서 찾기 좋다며 가로등 아래로 옮겨 가 열쇠를 찾는 사람과 같다고 말한다. p522
- 응용 수학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비유를 들어 순수 수학자들의 흠을 들춘다. 어떤 사람이 세탁물을 한 꾸러미 들고 세탁소를 찾고 있다. 그는 창문에 ‘세탁합니다’라는 간판이 내걸린 상점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 카운터에 빨래 꾸러미를 올려놓는다. 상점 주인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게 뭡니까?”라고 묻는다. “세탁하려고 그러는데요.”라고 말하자. “여기서는 세탁 안 합니다.”라고 상점 주인이 대꾸한다. 이번에는 세탁물을 들고 들어온 사람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저 간판은 뭡니까?”라고 묻자, 상점 주인은 “아, 우리는 간판만을 만듭니다.”라고 말한다. p522
- 과학으로부터의 유리는 20세기에 더욱 속도를 더해 갔다. 오늘날에는 수학자들에게서 과학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을 흔하게 듣고 또 읽는다. 수학자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수학 자체에만 관심이 있고 과학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지만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수학자 가운데 90퍼센트는 과학에 무지하며 또 그런 무지의 상태를 일종의 축복으로 여기며 유유자적하고 있다. p524
- 자연에 대한 이해와 지배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수학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오늘날 대다수 수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분야를 철저히 고립화해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고상한 학문으로 만들기를 원한다. p526
- 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가 되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존속할 수 없고 현실주의자는 이상주의자가 되지 않는 이상 오햇동안 존속할 수 없다고 언젠가 탈레랑은 말했다. p528
- 작위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는 데에 모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만일 지금처럼 순수 수학을 강조하는 추세가 계속된다면 미래의 수학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이 높은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 채 허명만을 지니게 될 것이다. 수학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창작물이다. 하지만 그 경이로움은, 파악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복잡한 자연 현상을 이해가 가능한 모델로 구성해 내고 그로부터 지혜와 힘을 얻는 인간 정신의 능력에 있다. p528
14장 수학은 어디로 가는가
머리를 조아려라,
보잘것없는 너 이성이여
- 블레즈 파스칼
- 이집트 인들과 바빌로니아 인들은 자신들이 어떤 종류의 구조를 세우게 될지 전혀 내다보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지 않았다. 기초를 다지지 않은 채 땅거죽 위에 곧바로 수학을 세워 올렸다. 당시 사람들은 땅을 깊이 파고 기초를 세우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구조물을 세우는 데 사용된 재료들, 즉 수와 도형에 대한 사실 명제들은 직접적 경험에서 도축된 것들이었다. 수학이 그러한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기하학이란 단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기하학, 즉 geometry는 땅을 측정한다는 뜻이다. p533
- 수학자들이 수학의 무모순성을 입증하지 못하면서 이상적 학문으로 여겨지던 수학은 그 권위에 큰 손상을 입었다. 유일하고 엄밀한 논리적 구조가 아니라면 수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수학이란 사람들이 언제라도 기꺼이 적용할 만한 논리를 통해 면밀하게 걸러지고 정제되고 또 조직화된 일련의 뛰어난 직관적 지식이다. 수학자들이 개념을 다듬고 그 구조를 체계화하면 할수록 직관적 지식은 그만큼 더 정교해져 간다. 그러나 수학이 의지하고 있는 직관적 지식은 인간의 감각 기관, 두외, 외부 세계 등의 산물이다. 수학은 결함 많은 인간이 만들어 낸 작품이고, 따라서 완벽한 기초를 찾으려는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p542
- 일찍이 1928년에 하디는 특유의 단도직입적인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수학적 증명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의 분석에서 보았지만 우리는 단지 중요 사항을 지적하기만 할 따름이다. 리틀우드와 나는 증명을 일종의 허튼소리라고 부른다. 증명이란 인간 심리에 영향을 주기 위한 수사이며 강의를 할 때 칠판에 그려놓은 그림이자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고안물일 뿐이다. p545
- 증명, 절대적 엄밀성 등은 “수학 세계 속에 거처를 두고 있지 않은” 허깨비이자 이상적 개념이다. 엄밀성을 엄밀하게 정의할 도리란 없다. 당시의 지도족 전문가들이 승인하거나 유행하는 원리가 채택되어 있을 때 그 증명은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기준은 없다. 수학적 엄밀성을 주장하기란 어려운 일이 되었다. 공리로부터 연역하는 방식으로 엄밀하게 증명한다는 생각은 이제 과거의 퇴물이 되었다. 논리학에는 인간의 사고에 제약을 가하는 온갖 오류와 불확실성이 담겨 있다. 우리가 수학을 연구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얼마나 많은 가정들을 했는지 꺠닫는다면 놀라움을 금하지 못할 것이다. p546
- 절망감을 달래기 위해 수학자들은 수학의 논리에 대해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논리적 증명의 미덕은 확신을 심어 준다는 것이 아니라 의혹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것이다.” “수학적 증명을 존중화되 의심의 고삐를 늦추지 마라.” “이제는 더 이상 논리적이기를 바라지 못한다. 단지 기껏해야 비논리적이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열정은 드높이되 엄밀함은 포기하라.” “논리는 우리로 하여금 특정 증명을 배격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어떤 증명도 확신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p547
- 바일이 말한 것처럼 수학은 사고 활동이지 엄밀한 지식 체계가 아니다. “수학의 궁극적 기초와 궁극적 의미라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최종적 해답을 얻을지, 또 객관적인 최종적 해답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알지 못한다. ‘수학화’는 언어나 음악처럼 인간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창조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이 전개되어 온 과정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완벽한 객관적 합리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554
- 수학은 우주이 심연 속에 숨겨져 있어 우리가 계속 캐내어야 하는 다이아몬드인가? 아니면 인간이 만든 인조석이지만 원석과 다름없는 빛을 발하고 있어 스스로의 성취에 얼마간 눈이 멀어 있는 수학자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인가? p560
- 현대적 논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파스칼은 <명상록>에서 이런 생각을 잘 드러냈다. "진리란 너무도 세밀해서 무딘 인간의 도구로는 그 진리를 집어낼 수 없다. 집어낸다고 해도 주변에 있는 것들도 함께 딸려 오는데, 이때 지리보다는 허위가 더 많이 딸려 나온다." p561명상록>
- 러셀의 제자인 루드비해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자란 발명가이지 발견자는 아니라고 믿었다. 이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수학을 경험적 발견이나 이성을 사용한 연역에 얽매이지 않은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사실은 무리수나 음수와 같은 기초적 개념들은 경험적 발견이나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실체로부터 연역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p562
- 인간이 수학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칸트주의자이다. 칸트는 수학의 근원을 정신의 조직 능력에서 찾았다. 그러나 모더니스트들은 수학이 정신의 형태나 구조로부터 연유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수학이란 정신의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p563
- 이성의 시대에 활약했던 지식인들이 수학을 인간 이성의 힘과 진리 획득의 능력을 보여 주는 증거로 지목하면서 이성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확언했던 사실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20세기 지식인들은, 이성의 힘을 확신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어느 누구도 수학을 기준이나 패러다임으로 내세우지는 못한다. 이 같은 사태의 변화는 곧 지적 재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명료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일에서 수학이 가장 광범위하고 심오한 인간의 노력이라는 사실과 수학이 이루어 놓은 성과가 곧 인간 정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수학은 이성으로 성취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p564
- 절대 진리를 찾는 끊임없는 노력은 절대 진리를 실제로 얻는 것의 차선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수학의 전망이 지금처럼 불투명했던 적은 없었다. 수학의 본질이 이렇듯 불분명했던 적도 없었다. 명백하다고 여긴 것을 세심히 분석해 보니 종잡을 수 없는 복잡한 내용이 나선처럼 꼬여 나왔다. 그러나 수학자는 기초론 문제에 계속 매달릴 것이다. p565
- 호메로스에 따르면, 신들의 저주를 받은 코린트의 왕 시시포스는 죽은 후에 거대한 돌을 언덕 위로 굴려 올리는 벌을 받았다. 돌을 굴려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기 직전에 어김없이 돌은 바닥으로 다시 굴러 떨어진다. 시시포스에게는 이 형벌이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헛된 희망조차 없다. 수학자들에게는 완벽한 기초를 마련하려는 본능적 의지와 용기가 있다. 그들의 고군분투는 영원히 계속될는지 모른다. 그들 역시 시시포스처럼 결코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대의 시시포스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노력할 것이다. p566
15장 자연의 권위
자연을 사랑하는 자를
자연은 결코 배신하지 않음을 알기에
이 기도를 드립니다.
- 윌리엄 워즈워스
- 수학자들이 새로운 결과를 도출하려 할 때 나갈 수 있는 방향은 다양하다. 고려 사항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과학에 대한 가치이다. 이 전통적 기준은 수학 이론을 만들어 내고 개발하는 데 여전히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수학의 기초에 대한 불확실성과 그 논리의 견고함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할 수는 없다고 해도 자연에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그 문제를 덮어 둘 수는 있다. “물질로 정신의 집을 짓자.”라고 한 에머슨의 말을 따르는 것이다. p569
- 역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응용을 중시하는 자세는 오늘날 수학을 고집하는 순수주의자의 생각과는 달리 그리 파격적인 것은 아니다. 수학 개념과 공리는 물질 세계의 관찰에서 생겨났다. 논리학 법칙조차도 경험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리를 낳는 문제와 증명 방식에 대한 암시까지도 경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공리에서 연역되어 나온 결과는 그 가치나 의의를 최소한 70여 년 전까지는 물질 세계와 부합되는지의 여부로 판단했다. 왜 수학이 얼마만큼 정확하게 물리 현상을 기술하고 예측하는가 하는 잣대로 그 타당성을 검증하지 않는 것일까? p570
- 형식주의자 하스켈 브룩스 커리는 <수리논리학의 기초="">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지만 과연 수학이 정당성을 갖추려면 절대적 확실성이 필요한 것일까? 특히, 이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왜 먼저 그 이론이 무모순이거나 절대적으로 확실한 순수 시간의 직관으로부터 유도되어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다는 것일까? 다른 과학에서는 그런 요구 조건을 달지 않는다. 물리학에서는 모든 정리가 가설에 머문다. 예측에 유용하게 활용된다면 그 이론을 채택하고, 그렇지 못할 떄에는 수정하거나 폐기 처분한다. 과거에는 수학 이론의 경우에도 그런 태도를 취했다. 받아들이던 수학 이론에 모순이 발견되면 그 이론을 적절히 수정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p572수리논리학의>
- 러셀은 1914년 쓴 시론에서 “물리적 기하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것이다.”라고 인정했다. 수학은 오직 논리로부터만 도출되지 않는다. <수학원리> 제 2판에서 그는 한 발 더 물러섰다. "전자기학의 맥스웰 방정식과 같은 논리와 수학은 그 논리적 귀결이 옳다고 관찰되었기 때문에 그 참됨을 믿는 것이다. " p574수학원리>
- 정리하자면 아직 그 참됨이 확립되지 않은 기초론으로 수학의 타당성을 결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수학의 ‘타당성’은 물질 세계에서의 응용 가능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수학은 뉴턴 역학과 마찬가지로 경험 과학이다. 수학은 응용 이론으로서 제대로 작동하는 한도 내에서만 옳은 이론이며,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에는 수정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2000년 동안 수학을 선험적 지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수학은 절대적 진리도, 불변의 진리도 아니다. p576
- 이렇게 순전히 수학만을 사용하여 맥스웰은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여러 현상들의 존재를 예측했으며 또 빛이 전자기적 현상이라는 점도 밝혀냈다. 여기서 주막할 만한 사실은 전자기파가 무엇인지 그 물리적 의미를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직 수학만이 그 존재성을 보증해 주고 있으며 그러한 수학의 도움으로 공학자들은 라이오와 텔레비전이라는 놀라운 기계를 만들어 앴다. 현대 물리학의 중력장, 전자기장, 전자장 등의 이론은 물질의 허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의 장들에 관한 법칙을 수학적으로 구성해 내고 이 법칙들로부터 결과를 도출해 냄으로써 물리적으로 적절히 해석했을 때 감각 인식으로 확인이 가능한 결론을 얻어 낸다. p583
- 현대 과학은 자연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악마니 천사니 신비한 힘이니 하는 정령 숭배를 제거해 냈다고 칭송받아 왔다. 그런데 현대 과학은 감가가에 호소하는 직관적이고 물리적인 내용을 점차 제거해 내고 있다는 점도 덧붙여야 한다. 현대 과학은 물질을 제거하고 있다. 현대 과학은 장이나 전자 같은 순전히 인위적이고 이상적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개념에 대해서는 오직 그 개념을 규정하고 있는 수학 법칙만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과학은 긴 수학적 연역을 거친 연후에나 최소한도의 필수적인 감각 지각만을 활용하고 있다. 과학은 합리화된 허구이며 그 합리화를 담당하는 것이 바로 수학이다. p584
-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는 수학의 힘에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솟구쳐 오르는 열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런 말을 했다. “이 수학 공식들이 지적 능력을 지닌 독립된 실재물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들은 우리보다 더 현명할 뿐만 아니라 그 공식을 발견해 낸 사람들보다도 더 현명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또 우리가 본래 그 식들에 투여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그로부터 얻는다는 느낌 역시 떨쳐 버릴 수 없다.” p584
- 제임스 진스는 자연 탐구에서 수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과학이 자연에 대해 그리고 있는 그림, 관측 내용과 합치될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그림은 수학적 그림이다. 수학 공식을 벗어나면 그 어떤 것도 확실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모델이나 그림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물리적 사태의 본질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사태의 양태를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 물리학이 최종적으로 얻는 수확물은 수학 공식이다. 물질의 참된 본질은 영원히 알 수 없다. p585
- 수학이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수학이 유용성을 갖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쉽사리 답하지 못한다. 수학은 여전히 자연의 작동을 매우 정밀하게 기술해 내고 있다. 왜 이와 같은 유용성을 갖는가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분석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왜 사람들은 ‘엄밀한’ 사고에 따라 구성된 독립적이고 추상적이고 또 선험적인 체계가 물질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p586
- 추상화에 관한 수많은 정리와 연역을 수반하는 주요 이론들이 공리만큼이나 실제 세계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실제 현상을 믿기 어려운 수준의 정밀함으로 그려 내고 있는 수학의 힘을 보여준다. 왜 여러 단계를 밟아 결과를 이끌어 내는 순수 추론에서 놀랄 만큼 높은 응용성을 지닌 결과가 도출되어 나오는 것일까? 이는 수학의 가장 큰 역설이다. p588
- <상대성 이론에="" 대한="" 간접="" 설명="">에서 아인슈타인이 언급한 내용이 주목할 만하다. "모든 시대의 과학자들을 괴롭혀 온 문제가 있다. 수학은 경험과는 무관한 인간 사고의 산물이다. 그런데 왜, 물리적 현실 속의 대상물들과 완벽하게 합치되는 것일까? 인간 이성은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한 사고만으로도 사물의 속성을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일까? 수학 명제가 실제 세계를 대상으로 삼은 한, 그 명제는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수학 명제가 확실할 경우는 실제 세계를 대상으로 삼지 않는 때이다." p588 상대성>
- 이에 대한 한 가지 답은 칸트로부터 연유했다. 칸트는 우리가 자연을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단지 우리에게는 감각 지각만이 주어져 있을 따름이다. 인간 마음에는 공간과 시간에 관한 구조가 이미 짜여져 있고 이러한 정신 구조의 지시에 따라 이 지각들을 조직한다. 인간 정신이 자연의 행동 방식을 결정한다는 그의 주장은 부분적입 해답을 제공해 준다. 정신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정신이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려고 미리 결정해 놓은 것을 보는 것이다. p 589
- 에딩턴에 따르면 인간 정신은 자연의 행동 양태를 결정한다. “과학이 최고의 진보를 이룬 현재, 정신은 자연 속에 자신이 스스로 투입해 놓은 것을 다시 길어 올릴 따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우리는 미지의 세계가 시작되는 기슭에서 이상한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 기원을 밝히기 위해 심오한 이론들을 차례로 만들어 냈다. 마침내 그 발자국의 주인공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보라! 그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 아닌가!” p590
- 수학이 효용성을 갖는 이유에 대한 칸트의 설명을, 최근에 화이트헤드는 더욱 정교하고 상세하게 다듬었다. 또 브라우베르도 1923년 논문에서 칸트의 설명을 재천명했다. 그 핵심 내용은 수학이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독립되어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적용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상을 인식하는 인간의 고유 방식 가운데 한 요소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자연은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 자연이란 감각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이 지어낸것이고 수학이란 바로 그 감각 소여를 조직하는 주요한 도구이다. 그렇다면 수학은 거의 자동으로 인간이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외부 세계를 기술하게 된다. 다수의 사람들이 동일한 수학적 조직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 정신이 서로 유사하게 기능한다는 주장으로 설명되거나 특정한 수학 구조를 받아들이도록 길들이는 문화 및 언어 환경으로 설명된다. 공간에 관한 최종 이론이 아닌 유클리드 기하학이 득세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후자의 견해는 설득력을 얻는다. p590
- 우리는 복잡다단한 현상으로부터 수학적으로 기술이 가능한 속성을 지니는 단순한 체계를 추상해 내려 한다. 이러한 추상화의 힘 덕분에 수학은 자연을 놀랄 만한 수준으로 정확하게 기술해 낸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의 수학적 ‘렌즈’가 허용하는 것만을 본다. p591
- 푸엥카레는 <과학의 가치="">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인간 지성은 자연에서 조화를 발견했다. 그런데 과연 그 조화는 인간 지성과 독립하여 존재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정신에서 완전히 독립된 실체는 불가능하다. 그 실체를 떠올리고, 보고, 느끼는 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세계는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 정신 밖에 존재하기 때문에 영원히 파악되지 않는다. 우리가 '객관적 실체'라고 부르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여러 사고하는 존재들에게 공통된 것, 모든 존재에게 공통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러한 공통되는 부분이 될 가능성이 있는 대상은 오직 수학적 법칙으로 표현되는 조화뿐이다. P595과학의>
- 라플라스는 자연의 움직임은 수학적 법칙에 따라 완벽하게 결정되지만 그 움직임의 원인을 항상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관찰은 근사적으로만 옳을 따름이라고 철저하게 믿었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확률론을 적용하여 가장 개연성이 높은 원인을 결정하고 확률적으로 타당성이 가장 높은 데이터를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세기가 채 지나지 않아 자연의 움직임은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하다는 생각이 그 뒤를 이었다. 자연은 무질서하다. 하지만 개연성 높은 움직임 또는 평균적인 움직임이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관측하는 내용이며, 우리는 이를 두고 수학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P601
- 자연을 통계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은 양자론의 발전으로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다. 양자론에 따르면 견고한 개체로서 한 지점을 점유하는 입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자는 공간의 어떤 곳에도 존재할 개연성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특정 지점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을 따름이다. 어쨌든 통계적 관점에 따르면 자연에 관한 수학적 법칙은 기껏해야 자연의 행동 방식 가운데 개연석이 가장 높은 것을 기술한다. 하지만 이 법칙들은 지구가 갑자기 궤도를 벗어나 우주를 떠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개연성이 가장 높은 것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P602
- 수학이 효용성을 지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만족스럽든 불만족스럽든 간에 자연 자체와 자연에 대한 수학적 기술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이는 단순히 수학이 관념화된 것이라는 점만이 아니다. 수학적 삼각형은 분명히 물리적 삼각형이 아니다. 그러나 수학은 물리적 현실로부터 그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다. P603
- 사람든 제한적이고 인위적인 개념을 도입해야만 자연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들어 낸 수학은 단순히 실행 가능성을 지닌 계획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연 자체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거나 내적 짜임새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수학은 자연을 탐구하고 묘사하고 지배하는 데 가장 뛰어난 방법적 도구로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수학이 효용성을 발휘하는 모든 영역에서 오직 수학만이 우리가 거둘 수 있는 유일한 성과이다. 수학이 실재 자체가 아니라고 해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실재의 최고 근사치이다. P604
- 수학의 이러한 성공은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다. 그 대가란 세계를 크기, 질량, 무게, 지속 시간 및 이와 유사한 개념들로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이는 한 사람의 키를 가지고 바로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학은 기껏해야 자연의 특정 과정을 묘사할 따름이며, 그것도 과정 전체를 온전히 담아 내지 못한다. 더욱이 수학은 물질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개념과 현상을 다룬다. 수학은 이간이 아닌 생명 없는 대상을 다룬다. 물질의 움직임은 반복적이며 수학은 그런 반복적 현상을 기술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학, 정치학, 심리학뿐만이 아니라 생물학에서도 그 유용성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마치 접선이 곡선의 한 점만을 스치고 지나가듯 물리 영역에서도 수학은 실체의 표피만을 건드린다. 지구는 태양을 타원 궤도를 그리며 도는가? 그렇지 않다. 지구와 태양을 모두 점으로 간주하고 또 다른 항성이나 행성을 모두 무시할 때에만 그런 결론이 나온다. 지구의 사계절은 영원히 변함없이 되풀이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조악한 수준의 정확도로만 반복이 예측될 따름이다. P605
- 지식의 확실성에 관한 한, 수학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다. 그 이상을 결코 실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확실성이란 끊임없이 쫓아가도 결코 잡을 수 없는 환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은 힘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수학도 이상에 불과하지만 이 역시 유구한 문명이 낳은 중요한 산물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이상을 가슴속에 품을 때, 진리를 얻기 위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방향을 더욱더 잘 파악하게 된다. p709
이 우주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 무한에 견주면 무이고 무에 견주면 전체이다. 무와 전체의 한가운데 위치한 존재라서 무를 이해하기도 불가능하고 전체를 이해하기도 불가능하다. 만물이 끝과 그 시작은 인간이 꿰뚫을 수 없는 비밀로 깊이 숨겨져 있다. 인간은 무에서 나왔으면서도 무를 이해하지 못하고 전체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 파스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