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죽은 자 산 자 - 한강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인터뷰 중에서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을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기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M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2024년 또 한 번의 계엄
한국에서 2024년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되었다. 찾아 보니 1948년 여수순천사건을 시작으로 17번이나 있었고 내가 살면서 겪은 계엄은 72년 10월 유신, 79년 부마민주항쟁, 79년 10.26사태, 24년 윤석열의 12.3계엄으로 총 4번이다. 하지만 앞의 세 번은 내가 너무 어렸을 때라 대학에 가서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나이가 중년 후반으로 접어들어서 겪은 것은 올해의 계엄이다. 충격적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정말 말할 수 없는 혼돈으로 쓸려가고 있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아서 감격하고 자랑스러운 기분도 잠시 그녀가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 스톡홀롬으로
간 사이 소년이 온다
의 작품에서 묘사하는 광주의 비극이 또 일어났다. 그녀는
지금 어떤 심정이고 또 우리들은 또 어떠했는가?
누구는 아픔으로, 고통으로, 괴로움으로, 분노로, 슬픔으로 광장에 나와 촛불 집회에 참가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 그렇다 적어도 이번에는 과거가 도와 주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 그렇다 적어도 이번에는 산 자를 구했다.
그래서 이 인터뷰를 접하고 지극히 단순하고 명료한 두 줄의 문장을 읽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또 울었다. 작가의 고민과 깊이, 통찰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려 오늘의 계엄을 몰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