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 글쓴이: 박창범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 이 글 하나로 현대 표준 우주론 모형을 알 수 있다.
  •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현재까지의 과학적 성과가 녹아 있다.
  • 더불어 이 분의 연구 성과와 철학도 녹아 있다.
  • 반복해서 읽고 하나 하나 구체적인 내용을 공부해 볼 가치가 있다.
  • 물론 그 분의 허락 없이 무단 전제하고 있다. 아래 원문 링크 참조

  •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천문학을 전공하고, 1990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천체물리과학과에서 우주론 분야를 연구했다. 1990년부터 칼텍 물리학과 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1992~2003년에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교수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는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천체물리, 우주론, 고천문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간과 우주="">, <한국의 천문도="">, <동아시아 일식도="">,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Astronomy - Traditional Korean Science 등이 있다.

재연되지 않는 단 한번 ‘우리 우주’의 진화

인류는 20세기에 우주의 실상과 변화 원리에 대한 이해에서 비약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약 한 세기 전, 우리의 인식 수준은 이제 겨우 태양계를 벗어나 그 너머에 별들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또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의 힘도 고전적 중력과 전자기력만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선 문턱에서 중력을 이해하는 새로운 이론이 발견되었고, 또한 극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미지의 현상들이 알려지면서, 강력과 약력이라는 새로운 힘들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물리법칙에 대한 포괄적 지식을 얻어가는 한편으로 인류는 20세기 초엽부터 전 우주를 향하여 대담한 탐사를 시작하였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세계의 여러 천문대에서 천체망원경들은 우주 전체를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다.

과학자들의 지식은 극미한 소립자 세계에서 수백억 광년에 이르는 전 우주 공간까지, 또 우주탄생의 찰나에서 무한 미래의 우주 종말까지 확장되었다. 비록 현대 과학이 대자연에 대한 전지(全知)를 갖추지는 못하였지만, 그리고 결코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인류가 이끌어낸 우주에 대한 총체적 상은 경이로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현재까지 과학자들이 도달한 현대 천문학의 핵심적 내용을 간추려 담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우주상이 인간의 세계관에 던지는 뜻 깊은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 다우주(多宇宙), 그리고 우리 우주

인간에게 우주란 질서를 갖추어 조화를 이루고 있는(cosmos), 존재하는 모든 것(universe)이다. 우주는 물리적으로 시공간, 물질, 그리고 자연현상으로 구성된다. 우주론이란 우주의 실상을 파악하고,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우주론 학자들은 우주의 물리적 성질을 규정한 명세 내역과 우주가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일들을 수록한 한편의 각본을 작성하는 사람들이다.

우주론 학자들이 천문학적 관측과 물리이론을 총동원하여 현재까지 알아낸,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우주’의 실상을 파악해 보자. 먼저 우주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많은 관측적·실험적 사실로부터 검증된 현재의 표준 우주모형에 따르면 우주공간은 삼차원으로 무한하다. 이 무한한 우주공간은 특정한 중심이나 끝이 없고, 거시적인 규모로 보았을 때 모든 곳에서의 기하학적 성질이 똑같다. 즉 넓게 보았을 때 우주의 모든 곳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성립하는 평탄한 공간이며, 물질의 양과 종류가 균일하다. 또 우주공간은 모든 곳에서 똑같은 비율로, 모든 방향으로 늘어나고 있다. 우주공간이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1929년에 외부은하의 후퇴속도로부터 처음 알려졌는데, 1990년대 말에는 공간이 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알려졌다.

표준모형에 따르면 우주는 지금으로부터 수십억 년 전까지는 공간이 늘어가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감속적인 팽창을 해 왔으나, 현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가속 팽창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균일·등방한 무한공간과 이러한 공간의 균일 가속팽창은 지난 세기에 이룬 위대한 천문학적 발견이었다.

둘째로 우주의 시간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 우주’는 지금으로부터 137억 년 전에 자연 발생하였다. 우주의 수명은 무한대이어서 앞으로 영원히 존재할 예정이다. 즉 우주는 137억년의 유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두고 있다.

현재 ‘우리 우주’를 채우고 있는 물질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첫째로 우주에는 아직 그 물리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암흑에너지가 고르게 퍼져 있는데 우주질량의 약 75%를 차지하고 있다. 암흑에너지는 강한 음의 압력을 내는 물질로서 그로부터 발생되는 중력은 인력이 아닌 척력이다. 우주공간은 암흑에너지가 내는 척력 때문에 현재 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우주공간이 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암흑에너지의 존재가 인정되었다).

우주에는 차가운 암흑물질이라는,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물질이 있다. 차가운 암흑물질의 대부분은 양성자나 중성자와 같은 보통의 물질(바리온이라고 부른다)과는 다른 물질이지만 그로부터 발생되는 중력은 인력이다. 이것은 우주물질의 약 21%를 차지한다. 은하 속을 돌고 있는 별들과 은하단 속을 돌고 있는 은하들은, 은하나 은하단의 빛을 내는 물질이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 천체들에는 많은 암흑물질이 뭉쳐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암흑물질은 우주공간에 널리 퍼져 있기도 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행성과 별들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합한 원자, 즉 보통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주물질의 약 4%는 이 바리온 물질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주질량의 대부분은 암흑에너지, 차가운 암흑물질, 바리온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외에도 우주에는 빛, 중성미자, 전자와 같은 경입자, 자기장 등이 퍼져 있는데, 우주질량의 극히 일부에 해당된다.

‘우리 우주’에서 물리학자들이 현재까지 발견한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힘에는 네 가지가 있다. 물질의 에너지 때문에 발생되는 중력, 전하와 자기장 때문에 발생되는 전자기력, 핵자 사이에 발휘되는 강력, 그리고 방사능 붕괴에 관여하는 약력 등이 알려져 있다. 이 네 가지 힘들은 과학자들이 우주의 진화와 천체의 생성, 나아가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는 기본 토대이다.

 이처럼 우주의 공간과 시간, 물질과 자연법칙에 대한 총체적 지식을 가지고 우주론 학자들은 ‘우리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재구성할 수 있다. 우주공간은 발생 직후에 이미 무한히 큰 상태였다. 그 무한 공간은 모든 곳이 균일하게 늘어나면서 더욱더 큰 무한공간으로 끊임없이 팽창을 해왔다. 태초에 발생한 우주의 물질은 극도로 높은 온도와 밀도로 시작하였으나, 공간팽창으로 말미암아 여러 차례 상전이(相轉移)를 일으키면서 (마치 온도가 내려가면 물의 상태가 기체에서 액체로, 다시 고체로 변하듯이) 서서히 차가워지고 희박해져 왔다. 빛과 중성미자는 우주나이가 수만 년이었던 때까지는 우주의 에너지밀도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공간팽창에 따라 밀도가 빠르게 감소하였고, 공간팽창에 의해 밀도가 천천히 감소하는 물질들(암흑에너지, 암흑물질, 바리온)이 오늘날 우주질량밀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우주공간 속에서 물질의 분포는 수십억 광년 이상의 큰 규모에서 보았을 때는 대단히 균일하지만, 작은 규모에서는 위치에 따라 약간의 밀도 차이가 태초부터 있어 왔다. 우주나이가 2만년 정도였던 때부터 밀도가 높은 곳으로 물질구름이 붕괴하기 시작하여, 수 억 년 뒤에는 수많은 별과 은하들이 찬란한 빛을 내며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빛은 태초부터 있었던 빛과는 달리 별 속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

각각의 은하 내에서는 수많은 별들이 성간구름으로부터 태어났다가 죽어 되돌아가는 순환 과정을 겪고 있다. 수소와 헬륨같은 가벼운 원소들의 비율은 우주의 나이가 약 3분이었을 때에 결정되었는데, 이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은하 내에서 태어난 무거운 별들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서 만들어진다. 무거운 별들은 일생을 마치며 폭발하는데, 이 때 함께 터져나간 중원소(수소와 헬륨보다 무거운 모든 원소)들은 새로운 별을 만드는 데에 섞여 들어가고, 별 주변의 행성과 생명체의 몸을 형성하는 필수 물질로 사용되었다.

‘우리 우주’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우주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 우주’는 시공간과 물질, 자연법칙에 있어 특정한 물리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 137억년의 긴 세월을 견디고 팽창해 온 ‘우리 우주’. 별을 잉태하고 중원소를 보존해 온 우리 은하. 행성이 생성될 때까지 기다려 주고 빛을 쪼여준 태양. 대기와 물을 붙들고 생명의 요람이 된 지구.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우주 물질밀도의 양과 불균일성의 정도, 소립자들의 개수와 질량, 네 가지 자연의 힘들의 상대적 크기와 성질 등에 부여된 놀랍게도 정밀한 균형 때문이다.

그런데 단 한번 발생한 ‘우리 우주’의 돌이킬 수 없는 일방적 진화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우주의 물리적 특성과 기원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에 동원되는 고(高)에너지 자연현상에 대한 물리법칙들은 개연성과 확률만을 알려주기 때문에 재연이 불가능한 단 하나의 표본으로는 검증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과학적 이론이 객관적 진실로서 인정될 수 있는 때란 그 이론이 재연 가능한 자연현상과 비교가 가능한 경우이다. 우주론은 우주 전체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궁극적인 문제에 있어서 우주가 단 한 개로 유일하여 재연이 불가능하다는 문제와 연구주체도 연구대상에 포함된다는, 주체-객체 분리가 불가능한 비과학적 주제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어려움을 우회하는 하나의 착상이 다우주(多宇宙, multiverse) 가설이다. 다우주란 비록 서로 교신할 수 없어 인지될 수는 없지만 물리적 성질이 조금씩 다른 무한한 개수의 우주들로 이루어진 우주집단이다. 한 우주는 다른 우주와 전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다른 우주의 한 곳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은하와 별을 키워내서 행성과 생명을 태어나게 한 ‘우리 우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극도의 정교함을 필요로 한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특수한 성질을 갖춘 하나의 우주가 우연히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다우주 세계에서는 무수한 우주 중에 별과 생명의 탄생에 적합한 조건을 지닌 우주가 반드시, 그리고 무한히 많이 있게 마련이다. 마치 인간이 하나의 평범한 은하 속에 있는 천억 개의 별들 중에서 평범한 하나의 별인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 중에 생명의 탄생과 진화에 적합한 행성인 지구에서 발생했듯이, 무한개의 우주 중에 우연히도 이 모든 드라마를 가능하게 한 적합한 우주가 필연적으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간은 우주를 관찰하는 유일한 지적 생명체일까

  • 은하들의 세계, 그리고 우리 은하

인간의 우주상은 지구의 일부를 무대로 한 원시적 세계상을 출발점으로 해서, 약 2500년 전부터는 태양과 태양계 행성들의 모임을 전 우주로 인식해오다가, 약 400년 전 태양계 너머의 별들의 세계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 2천년 동안 태양계가 우주 전체로 알려졌던 것처럼, 20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우리 은하를 이루고 있는 별의 집단과 그 공간이 우주 전체라고 이해되었다. 별들이 무리를 지어 우리 은하를 이루고 있고, 이런 은하들이 우주에 수없이 널려 있다는 다은하설(多銀河說)이 입증된 것은 불과 80여 년 전의 일이다. 외부은하들은 1920년대에 그 존재가 처음 알려진 이후로 꾸준히 연구되다가 지난 20여 년간 세계 각국 천문학자들의 집중적인 연구 대상이 되어왔다. 그로 인해 수십억 광년 거리까지 은하들의 공간 분포가 탐사되고 있다. 은하가 처음 생성되었던 시점이 우주 나이가 수억 년이었던 때로 밝혀지고 있고, 나선은하와 타원은하의 형태가 주변 환경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또 그 속에서의 별 탄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등 은하들의 생성과 진화 과정이 규명되고 있다.

공간이 무한한 ‘우리 우주’에는 무한 개의 은하들이 존재한다. 은하들이 물질 덩어리로서의 개체로 태어난 이유는 우주초기에 물질분포에 조그마한 불균일성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태초에 우주공간을 팽창시키던 에너지에 필연적으로 양자역학적 요동(quantum fluctuation)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물질밀도의 차이가 생겨났고, 훗날 물질이 중력에 끌려 밀도가 높은 곳으로 모여들어 은하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은하들은 거대규모에서의 물질밀도의 차이를 반영하여 더 큰 천체를 형성하고 있다. 은하들은 수십 개, 수백 개가 모여 은하군이나 은하단을 이룬다. 또 은하군과 은하단들이 여럿 늘어서 있는 집단을 초은하단이나 우주거대구조라고 부르며, 수억 광년에 걸쳐 은하들이 거의 없이 텅 비어 있는 곳을 거대 공동(void)이라고 부른다. 은하가 모여 이룬 이런 대규모 천체들은 현재에도 중력에 의해 형성 중에있는 천체들이다. 이렇게 은하들은 우주의 물질계를 모양 짓는 기본 세포와 같은 존재이다.

나선은하의 내부에서는 성간구름과 별 사이에 물질의 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은하 속에 뭉쳐 있는 암흑물질과 바리온 물질은 강한 자체 중력을 발생시켜서 자신의 물질을 묶어놓고 있다. 이 속에서 일부 성간구름은 충분한 밀도에 도달해 붕괴를 할 수 있고, 수많은 별들을 탄생시킨다. 성간구름이 수축해서 만들어진 별들은 중심부의 온도가 천만 도 이상 올라가면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서 빛을 내며 살아간다. 별 속의 원소들은 탄생 당시의 수소가 결합해 헬륨이 되고, 헬륨이 결합해 탄소가 되는 일련의 핵융합 반응을 통해 중원소로 바뀌는데, 질량이 태양의 10배 이상에 이르는 별들은 핵연료가 고갈되는 순간 자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다가 급격히 발생되는 중력에너지로 말미암아 폭발하게 된다.

초신성 폭발 때 별 속에서 합성된 갖가지 중원소들은 은하 속으로 흩뿌려지는데, 은하의 자체 중력 때문에 대부분 은하 바깥으로는 퍼져나가지 못하고 주변의 성간구름에 섞였다가 새로운 별들을 만드는 재료로 다시 쓰인다. 중원소는 지구형 행성과 생명체를 만드는 데에 필수적인 원소이므로, 별을 탄생시키고 중원소를 축적해 온 은하의 존재는 생명 출현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다.

우리 은하는 질량이 보통의 은하들보다 약간 작은, 평범한 나선은하이다. 오랜 옛날에 별생성이 멈춘, 중원소가 거의 없는 타원은하들과는 달리 우리 은하는 현재에도 꾸준히 별들을 탄생시키고 있으며 중원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우리가 중원소 덩어리인 지구를 터전으로 살고 있고, 태양계가 나선 은하 안에서 생성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선은하는 중심의 은하핵(nucleus), 늙고 붉은 별들로 이루어진 둥그런 팽대부(bulge), 그보다 더 크지만 밀도가 낮은 헤일로(halo), 그리고 성간구름과 먼지로부터 젊고 푸른 별들이 태어나고 있는 납작한 원반(disk)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선은하에는 오랜 기간 동안 기체가 바깥에서 흘러 들어와서 원반을 만들고 새로운 젊은 별들을 탄생시켜 왔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타원은하는 생성초기에 또는 진화 과정 중에 별 생성이 끝났고, 현재는 늙고 붉은 가벼운 별들만이 남아 있다.

우리 은하는 무한히 넓은 우주공간의 임의의 한 점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고, 우주에는 우리 은하와 여러 모로 비슷한 외부은하들이 무수히 많다. 우리 은하는 약 30개의 다른 은하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있는데, 이 은하 떼를 ‘국부은하군’이라고 부른다. 국부은하군에서 가장 밝은 은하는 안드로메다은하이다. 국부은하군은 또 다른 여러 은하군과 처녀자리은하단 주변에 모여 있는데 이 전체를 ‘국부초은하단’이라고 한다. 국부초은하단은 다른 초은하단이나 우주거대구조에 비하면 매우 작고 가벼운 초은하단이다. 우리 주변 약 1억 광년의 공간 속에서 보았을 때 우리의 주소는 국부초은하단 내, 국부은하군 내, 우리 은하 내, 태양계 내, 그 세 번째 행성 지구인 것이다.  

  • 별들의 세계, 그리고 태양

별은 성간구름에서 태어나, 자신이 지니고 태어난 질량에 따라 정해진 수명을 살다가 다시 성간구름으로 되돌아간다. 은하 속에서 성간구름은 붕괴하려는 중력과 팽창하려는 기체압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가, 적절한 외부 자극이 주어져 중력이 우세해지면 무너져 내려 수많은 별들을 생성시킨다. 성간구름은 붕괴하면서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는데, 이 와중에 쪼개진 각 조각이 수축해서 밀도가 높아져 온도가 1천만도로 올라가면 별로서 태어나게 된다.

별이 중심부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서 충분한 시간동안 안정된 수명을 살기 위해서는 질량이 태양의 0.08배에서 약 100배 사이이어야 한다. 무거울수록 별 속에 들어 있는 핵반응 연료는 많지만 핵반응 속도가 크게 빨라져서 수명이 짧아진다. 질량이 태양의 8%이어서 간신히 핵융합을 할 수 있는 가장 가벼운 별은 수명이 1조년에 이른다. 구름 조각이 이보다 더 가벼우면 핵반응을 일으키지 못해서 실패한 별이 되는데, 이들을 갈색왜성(brown dwarf)이라 부른다. 목성과 같은 천체가 이에 해당된다. 우리 별, 태양의 수명은 100억년이다.

별이란 핵융합 반응으로 발생한 에너지로 빛을 내는 천체로 정의한다. 새로 태어난 별은 처음에 수소를 태우는데 이때의 별을 주계열성(主系列星)이라고 한다. 수소가 고갈되면 별은 중심부가 수축하고 외곽부는 크게 팽창하는데 이를 적색거성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별은 중심에서 헬륨, 탄소, 산소, 마그네슘, 황 등의 원소를 만들어나가는데, 질량이 태양의 10배를 넘는 가장 무거운 별들은 중심부의 핵융합 반응이 철을 만드는 단계까지 진행된다.

그런데 물질의 온도와 밀도를 높여 자연적으로 핵융합이 진행될 수 있는 한계가 철 원소까지이다. 왜냐면 원자핵을 묶는 강력은 작용 범위가 매우 좁기 때문에 여러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합하여 원자핵이 어느 이상 비대해지면 양성자들에 의한 전기적 반발력을 강한 핵력의 인력이 감당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 원소까지는 온도가 충분히 높기만 하면 양성자와 중성자는 강력에 의해 결합하여 에너지가 낮은 더 안정한 상태가 되지만, 철보다 무거운 중원소는 에너지를 주어 억지로 결합시키지 않으면 만들 수 없고, 만들었다 하더라도 불안정하여 보통은 자연 붕괴를 하게 된다.

결국 철까지 핵융합이 진행된 별의 중심부는 더 이상 핵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별의 중심부는 자체 중력을 버틸 압력이 부족하여 걷잡을 수 없는 붕괴를 맞이한다. 이 때 발생한 막대한 중력에너지는 함께 떨어져 내려오는 별 외곽부의 물질을 폭발시키는데, 이 현상이 초신성 폭발이다. 이 때 별을 이루던 물질의 상당량이 은하 속으로 되돌아가 성간구름에 섞여서 다음 세대의 별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게 된다. 폭발한 별의 중심에는 별의 중심부 물질이 극도로 높은 밀도로 압축된 상태인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이 남는다.

태양은 약 50억 년 전에 태어나 중년의 나이를 지녔으니, 수명의 반을 살아온 셈이다. 우리은하의 반지름은 약 10만 광년인데, 태양은 은하 중심에서 2만 6천 광년 떨어진 거리에 초속 220km의 속도로 원반 위에서 우리은하 둘레를 돌고 있다. 태양은 홀로 있는 별이어서 그 주위에 행성들이 안정된 궤도를 돌 수 있다. 태양은 인류에게 숭배의 대상이 될 만큼 지상의 모든 생명체와 자연현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특별한 별이지만, 우리 은하에 담겨 있는 천억 개의 별들 중에 전형적인 질량을 가진 평범한 별들 중 하나이다. 우주에는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가 무한개가 있으니, 태양과 같은 별도 무한히 많이 있다.

  • 행성들의 세계, 그리고 지구

성간구름 조각이 뭉쳐 별이 생성될 때 일부 물질은 별 속으로 끌려들어가지 못하고 원반 모양을 이루며 별 주위를 맴돌게 된다. 이 물질들의 일부는 스스로 뭉쳐 수축하지만 핵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는 작은 기체공 행성을 만들기도 하는데 목성과 같은 행성이 그러한 예이다. 또 구름에 섞인 성간먼지(중원소)들의 일부는 서로 부딪히며 결합해 지구와 같은 딱딱한 행성으로 자라날 수도 있다. 태양과 같은 보통의 질량을 지닌 별도 여러 개의 무거운 행성들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많은 별들이 행성계를 이루고 있으리라고 추측돼 왔다. 쌍성이나 다중성과 같이 한 개 이상의 별들이 서로 궤도 운동을 하는 곳에는 행성들이 생겨나기 힘들고, 생겨나더라도 행성계가 오래 유지되기 힘들다. 그러나 태양과 같은 홑별들은 주변에 일정한 중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행성들이 안정된 궤도를 돌며 장기간 일정한 환경 속에서 진화를 해 나갈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홑별 주변에는 행성계가 존재하리라 믿어지고 있는 것이다.

태양계 밖에서 다른 별의 행성이 실제로 처음 발견된 것은 1995년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가까운 별들을 탐사한 결과 2009년 6월 현재 275개의 외부행성계에서 349개의 행성들이 발견되었다 (http://exoplanet.eu/). 또한 외부행성은 향후 천문학계의 가장 중요한 탐사 대상 천체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태양계 이외의 외부행성들의 존재는 과학적으로 당연히 예측되는 것이고, 그에 대한 탐사에서 새로운 과학적 원리에 대한 진전을 이루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탐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외계생명체 발견과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에 그 궁극적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는 과학의 제 분야와 종교, 철학적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지난 500년간 인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수많은 천체들 중 하나일 뿐이고, 태양은 우리 은하 주위를 도는 천억 개의 별들 중 하나일 뿐이고, 또 우리 은하는 우주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은하들 중 하나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앞으로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발견된다면, 인간은 우주를 관찰하는 유일한 지적 생명체로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명체가 지구라는 특별한 행성 위에서 우주 역사상 단 한 번 탄생한 것이 아니라, 전 우주의 수많은 곳에서 생명의 탄생이 있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평범한 자연현상 중의 하나임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