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죽은 자 산 자 - 한강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인터뷰 중에서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을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기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M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

2024-12-10 · (updated 2025-06-15) · 347 words

수학은 진리의 학문인가 - 모리스 클라인

20세기 수학의 기초론의 발전과정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적절하게 요약될 수 있을 듯 싶다. 라인 강둑에 수백 년 된 아름다운 성이 서 있다. 성 지하에 사는 부지런한 거미들이 거미줄로 거미집을 정교하게 지어 놓았다. 어느 날 세찬 바람이 불어 거미줄이 부서졌다. 거미들은 미친 듯이 거미줄을 뽑아 집을 고쳤다. 그것은 거미들이 성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것은 자기들이 지은 거미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리스 클라인 <수확의 확실성>

2023-02-11 · 63 words

에피쿠로스의 역설

에피쿠로스(Epikouros: 기원전341~271) 그리스 아테네 철학자 헬레니즘 시대, 에피쿠로스학파의 창시자, 쾌락주의 철학 여기에서 쾌락은 정신적 평화를 의미하지 물질적, 욕망적 쾌락은 아니다. 죽음에 대하여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모두 감각에 달려 있지만,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올바른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죽게 되어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삶에 무한한 시간을 부여함으로써가 아니라, 불사에 대한 동경을 제거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중략..) ...

2022-10-30 · 173 words

떨림과 울림 - 김상욱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니다. 아무 의미없이 법칙에 따라 도는 것 뿐이다. 공룡이 멸종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화의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우주에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아무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인간이 우주보다 경이롭다. - 김상욱 (물리학자)

2022-09-13 · 91 words

단념

김기림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별거 아니었다. 끝없이 단념해 가는것. 그것 뿐인 것 같다. 산 너머 저 산 너머는 행복이 있다 한다. 언제고 그 산을 넘어 넓은 들로 나가 본다는 것이 산골 젊은이들의 꿈이었다. 그러나 이윽고는 산 너머 생각도 잊어버리고 아르네는 결혼을 한다. 머지않아서 아르네는 사오 남매의 복 가진 아버지가 될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수많은 아르네들은 그만 나폴레옹을 단념하고 셰익스피어를 단념하고 토머스 아퀴나스를 단념하고 렘브란트를 단념하고 자못 풍정낭식한 생애를 이웃 농부들의 질소한 관장속에 마치는 것이다. ...

2022-09-02 · 330 words